[국회 정회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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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일 오전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이 벌어졌던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북한 언론의 이회창총재 비방보도가 국회 파행으로 이어질지는 몰랐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북한 변수가 우리 정치권에 본격 상륙했다" 고 말했다.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의 '청와대 친북세력' 발언이 나오자 민주당쪽에서 "용공음해" 라며 격렬하게 반발해 이만섭 국회의장이 정회를 선포한 뒤였다. 이로 인해 본회의는 장시간 중단됐다.

국회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는 예견됐던 측면이 있다" 고 지적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평행선을 달리는 대북관이 결국 폭발했다" 는 것이다. 먼저 남북 정상회담과 6.15선언을 보는 여야의 엇갈린 시각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나라당 박관용(부산 동래')의원은 12일 본회의에서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북자세는 답답하고 굴욕스럽기까지 했다" 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마음 속의 실핏줄을 잇는 쾌거" (李海瓚정책위의장)란 평가와 정반대다.

한나라당이 '북한 불신론' 을 바탕으로 대북 상호주의 원칙과 국군포로.납북인사 송환문제를 앞세우고 있다면, 민주당은 신뢰회복을 위한 '탄력적 상호주의' 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시각 차이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북 경협 이면합의설' 등을 제기함으로써 감정적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남한 정치권 흔들기' 가 계속될 경우 재충돌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의총에선 "정상회담뒤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장애물을 만들고 있다" (沈載權의원), "權의원의 개인 실수가 아니라 당 차원의 조직적 전략" (金敬天의원)이라며 뿌리깊은 대야 불신을 드러냈다.

남북 대결구도에다 남남(南南)갈등이 더해져 정치권이 북한 언론의 보도에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야간에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산도 사태를 꼬이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4.13총선 부정선거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통해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는 계산이다.

반면 민주당은 정상회담 후속조치와 개각 등을 통해 정국을 끌고나갈 구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여야는 15일부터의 상임위 일정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언론 보도로 국회가 파행을 빚은데 대해 전문가들은 양비론을 펼치고 있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행정학)교수는 "북한 언론이 우리 정치지도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했다" 며 "국내정치에 대한 내정간섭의 성격도 있다" 고 말했다. 여야가 대북 인식에 대한 공통분모를 넓혀야 하는데 국론분열쪽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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