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한달] 급류타는 4강 역학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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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에도 허실(虛實)이 있다. 일견 거대해 보이던 파도가 해변에 다다라서는 한줌의 물거품으로 그치는가 하면, 금세 사라질 듯하던 파도가 일관된 강도로 몰려와 해변을 강타하기도 한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변화의 파도가 일고 있다. 과연 이 파도는 어떤 성격의 것일까. 변화의 시대일수록 변화의 허실을 가려내고 외양(外樣)이 아닌 실질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상회담에 따른 가장 분명한 변화는 남북한이 직접 대화를 복원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은 우리를 외면하면서 대미협상만을 고집하였고, 그 결과 한반도의 주요 문제들이 당사자인 남북이 아니라 북.미간에 논의되는 기형적인 상황이 지속되었다.

자연히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커졌고, 한.미.일 공조는 이 현실의 반영이었다. 남북대화의 복원으로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정상회담에 대한 주변 4강의 태도에 미묘한 차이가 감지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남북이 직접 대화한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교류.협력에서부터 군사적 긴장완화, 핵.미사일 문제에 이르기까지 주변국의 이해와 불가분 연결되거나 국제적 협조를 필요로 하는 문제는 산적해 있다.

정상회담에 따른 화해나 민족중심적 분위기의 확산은 바람직하지만 많은 문제에 남북간 입장차이가 있는 것도 현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일 공조는 북한문제를 다루는 데 여전히 유용한 개념이며 이를 남북대화와 조화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 외교의 과제다. 남북대화의 재개로 이제 우리가 한.미.일 공조를 주도해야 하며 그만큼 책무도 커진다.

정상회담을 통한 관계개선의 계기를 물거품이 아닌 시대적 대세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다가오는 주요8개국(G8)정상회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회의, 그리고 10월의 서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백진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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