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바가지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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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또 여름인가. 휴가철이면 바가지가 기승이다. 벌써 신문.방송은 바가지 상혼 규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말만 들어도 모처럼의 휴가기분이 싹 가신다. 참 신기한 일은 그럴 줄 알면서 또 간다는 사실이다. 다녀와선 배가 아파 입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게 과연 바가지인가. 배 아프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여름 한철 장사란 사실을 상기하자. 한철을 쓰기 위해 일년간 텅 빈 시설을 유지.관리해야 한다.

고로 손님 입장에선 한철 머물려면 일년 방세를 내야 한다. 사리가 이럴진대 숙박료 비싸다고 화내진 말자는 이야기다.

여름 휴가철이 오면 그간 놀려둔 시설을 수리.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한철 반짝 장사해서 떼돈 번 사람 없는 건 그래서다.

음식도 바가지. 상하기 쉬운 여름 음식 보관하기란 쉽지 않다. 비용도 만만찮다. 그래도 상해버린 음식은 그만큼 손님이 더 부담해야 한다.

산 정상, 바다 끝, 외딴 섬에까지 운반하는 비용은 또 얼마냐. 시내 우리집 옆, 편리한 슈퍼와 비교할 생각은 말자. 이 한더위 부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손님맞이에 바쁜 사람들이다.

아무렴 휴가를 즐기러 온 내 형편이 낫지 않으냐. 너무 그렇게 영악스레 따지지 말자. 그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해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히 휴가를 즐길 수 있지 않으냐. 시설도 빈약하고 불편하다.

음식맛인들 시내 일류 식당과 비교할 순 없다. 하지만 그래도 노숙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다행 아니냐. 생각하면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저씨 덥지요. 애 쓰십니다." 인사라도 건네라. 휴가길 하루가 한결 즐겁고 정겨운 만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없는 피서지를 생각한다면 고맙단 인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인간적인 감동도 느낄 수 있다.

땀 범벅이 된 그들의 얼굴에서 삶에의 진한 의미도 읽을 수 있으리라. 잠시 철학적 사색에 잠기게 된다. 어쩌면 이런 감상에 젖는 게 휴가의 본질인지 모른다.

산지 농산물이 더 비싸단 소리도 자주 듣는다. 회 한접시에서 수박.과일까지 현지 값이 더 비싸다고들 불평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 농수산물 시장은 전국에서 많이 모여든다. 그래서 값이 쌀 수도 있고 맛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마라. 파도소리 들으며 먹는 회맛을 어찌 시내 식당과 비교하랴. 밭두렁.풀밭에, 원두막에 앉아 먹는 수박 맛이다.

그 풍미에서, 멋.낭만.신선함에서, 그리고 주위의 수려한 자연경관에서 이걸 어찌 값으로 따지랴.

도회의 얄팍한 타산강박증은 잠시 잊자. 이른 봄부터 손을 불며 씨 뿌려 알뜰히 가꾼 농민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자. 아이들에게도 이걸 가르쳐야 한다.

알뜰 피서랍시고 너무 영악스레 따지지 말자. 휴가만이라도 넉넉한 여유를 가르치자. 그래도 굳이 바가지라 우긴다면 어설픈 경제이론이나마 들먹일 수밖에 없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모자라면 값은 오르게 되어 있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시장원리다. 피서지엔 사람이 넘친다.

모래사장은 콩나물시루다. 거기서 텐트 하나 얻으려면 하늘의 별따기다. 값은 아예 묻지도 말아야 한다.

긴 설명 필요없다. 피서지는 비싸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그래도 억울하다면 아예 가지 말아야 한다. 뒤뜰에 편안히 누워 떠가는 구름을 보며 책이나 읽을 일이다.

만원버스에 시달릴 것도, 바가지 요금에 핏대를 올릴 일도 없다. 이웃 편의점의 콜라 한 잔이면 넉넉한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실속파도 주위엔 많다. 여름엔 피서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면 피서지 바가지도 사라지겠지. 안타깝지만 그날까진 피서지는 비싸다. 그래도 가야겠다면 사람이 없는 곳을 찾든지 아니면 비싸다는 각오를 하고 떠나야 한다. 그래야 핏대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이게 모처럼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비결이다.

오해 말자. 바가지 씌우라고 충동질하는 건 아니다. 하도 바가지 썼다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해본 소리다.

이시형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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