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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전환기와 DJ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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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꼭 한달 전 우리 사회는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몽환적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후 일어났던 의료대란과 은행파업 사태에 따른 짜증과 불안으로 정상회담에 대한 환희의 기억은 지금 가물거리기만 한다. 내정의 혼란이 외치의 찬란함을 뭉개버리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나는 형세다.

*** 外治 발목잡는 내정혼란

이제는 남북이 하나가 되는 멀고 험난한 도정의 이정표를 놓는 순간이다. 남북정상이 분단 55년 만에 합의한 사항은 평화적 분단상태의 보장과, 그것을 담보할 여건마련을 위해 남쪽이 북쪽에 경제지원을 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산가족 및 장기수 처리문제는 핵심적 합의사항의 부산물일 따름이다. 지금까지의 대결지향적인 불안정한 분단상태, 외세 의존적인 분단형태의 존속이라는 냉전적 분단구조를 남북 합의에 의한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관리체제의 분단상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통일론 합의의 요체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남녘이 북녘의 경제발전을 위?지원한다는 보장장치가 합의됐다.

이런 기조하에 남북이 평화와 신뢰의 켜를 쌓고,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말했듯이 20~30년후 통일조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해진다.

이같은 민족사의 그랜드 디자인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화합과 안정이 선결조건이 된다. 그 바탕에서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으로 남북정상의 합의를 실현시키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민족사의 비상한 국면을 맞이한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어느 분야를 둘러봐도 북녘을 껴안고 갈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의 조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상황이다.

그리고 정치가 역시 문제의 본질이다. 책임은 집권측에 있다. 그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처방과 힘도 집권측에 있다. 金대통령이 난마처럼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최종적 책임을 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마음을 달리 먹고 비운다면 상당 부분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길과 능력을 아울러 가졌다고 생각된다. 단임대통령이라는 조건이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기다.

더구나 金대통령은 5년 단임의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야당시절 시국이 긴장할 때면 집권측에 거국내각의 구성 또는 대통령의 당적이탈을 요구했다.

대통령의 당적이탈은 그의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의 공약이기도 하다. 남북통합의 역사적 장정(長征)에 들어선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이 한 정파의 수장이라는 울타리를 허물고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수(數)의 논리에 갇힌 좁쌀정치로는 이 민족사적 정국을 운용할 수 없다. 집권 초부터 지금까지 수의 논리에 집착한 정국운용의 결과는 여야간 끝없는 대치상태로, 급기야는 자민련의 막가파식 정치행태로 국민의 혐오감과 사회불안만 높였지 않은가.

집권자의 너그러움, 인내, 그리고 성의로 야당과 절충하고 설득하는 조화의 정치를 펼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단계 성숙시키는 공적을 쌓는 일이 된다. 그것은 또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는 자신의 지론과도 합치하는 일이다.

*** 여야 초월한 국정운영을

金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흉금을 터놓고 '자주' 에 대한 특유의 논리로 주한미군과 외세문제를 설득한 그 솜씨와 열정을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에게는 왜 못펴겠는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절충과 조화의 정치에 매진한다 하더라도 어려운 시기다. 金위원장에게 건넨 노란 봉투속 경협물목의 차질없는 이행을 위해서도 내치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金대통령과 李총재는 의료대란 당시 영수회담을 열고 큰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서로가 이제는 경쟁자가 아니라는 점도 각자의 운신을 보다 자유롭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金대통령이 기존의 여야개념에 따른 국정운영방식에서 벗어나는 여유를 보일 때 내부단합은 물론 대북지원 여건은 한결 수월하게 조성될 것이다.

金대통령이 여야를 초월해 국정을 공정하게 이끌면서 남북문제를 성공적으로 관리한다면 그는 국민통합과 민족통일의 초석을 닦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 이 될 것이다. 모든 국민의 축복 속에 노벨평화상을 받는 DJ를 보고싶다.

이수근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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