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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밥그릇 싸움과 정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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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사이 우리 사회는 이른바 '밥그릇 싸움' 으로 어수선하다. 물론 이해 당사자들은 이것이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명분이 자기 밥그릇의 크기와 관련되지 않는다면 이들이 그렇게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할 리는 만무하다.

심지어 공익 실현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 인사들조차 자신의 명예나 지위와 전혀 상관없다면 감옥에 갈 각오로 그렇게 투쟁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 말을 너무 냉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어차피 인간 사회는 그런 것이다. 사람은 이기적 동물이고 이기적 동물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익집단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투쟁하면 그만이고 개인 역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인이나 집단은 이익만을 추구하되 공멸을 막기 위해 타협하여 정부를 만들고 정부는 이익 투쟁을 공정하게 조정하면 된다고 하는 생각, 이러한 속류 자유주의 사상은 인간 세계의 피폐를 불러오는 매우 조악한 사상이다.

쉽게 말해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꼭 그대로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남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피해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착하게 행동하게 된다. 남도 착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을 착하다고 믿는 사상에 바탕을 두면 사회를 통제하고 이익 갈등을 조정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기 어렵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믿는 사상은 스스로의 예언에 의해 인간 사회를 악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있다.

하나는 교육이다. 사람의 본성 중 이기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이익 투쟁을 얼마나 공정하고 합법적이고 윤리적으로 해야 할 것인가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르치는 것이다.

또 사람의 착한 본성을 인정하고 이를 북돋우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학교와 언론.문화 단체들이 이런 일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올바로 서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공정하게 만들어 엄정히 시행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교육 목표에 비해 정부 정책은 바로 눈앞의 일이고, 이에 따라 이익 투쟁의 문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부의 행동에서는 법 집행의 공정성과 엄정성 모두가 보이지 않는다. 의사들의 집단 파업과 롯데호텔 노조 파업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은 일관성.정당성.엄정성 모두를 잃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의사들은 국민의 건강 보호를 위해 투쟁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요구사항이 옳다고 하더라도 나는 전혀 믿지 않는다.

밥그릇 싸움의 고전적 모습일 뿐이다. 롯데호텔 노조의 싸움은 밥그릇 싸움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원래 노조투쟁이란 그런 것이다. 솔직하다. 그리고 힘이 없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사와 노동자의 지위 차이가 파업에 대한 정부 대응에서 이렇게 정확하게 나타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척이라도 하는 것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길인데, 이런 점에서 정부는 계급적일 뿐 아니라 바보다.

*** 이익투쟁 공정한 해결을

어느 나라에서건 언제이건 정부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 나름대로의 이익을 가지고, 사회계급들의 끊임없는 압력 속에 있다. 압력을 더 크게 행사할 수 있는 집단에 정책 영향을 더 크게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차이는 이러한 집단이기주의의 압력 속에서 얼마나 중심을 잡고 공익을 위해 공정하고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느냐에 있다.

큰 정치와 작은 정치의 차이도 그런 것이다. 작은 정치는 집단들의 밥그릇 싸움을 조정하는 데 그치지만, 큰 정치는 이를 공익의 실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무엇이 공익이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이룰 것이냐를 알고 실행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의 목표다.

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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