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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극단을 찾아서] 10·끝 속초 '굴렁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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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속초의 연극인은 요즘 남북 화해분위기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많은 주민이 실향민 혹은 그 2세라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올해로 창단 10년째를 맞는 극단 굴렁쇠(대표 김귀선.37) 단원도 대부분 실향민 2세들. 김대표 부친의 고향도 평북 순천이다.

속초 예총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배우들은 바닷사람답게 얼굴빛이 까무잡잡하고 건강하다.

그들은 지금 다음달 15일, 광복절을 고대하고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통일의 의지를 그린 총체극 '약속의 땅 대한민국' 의 공연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김대표는 "속초의 역사를 다양한 몸짓으로 재현할 생각이다. 해방과 분단, 전쟁과 수복, 그리고 태풍과 해일 등을 통해 속초는 물론 나아가 우리 현대사 전체를 돌아보고 통일의 뜻을 재차 확인할 작정이다" 고 말한다.

그는 지난달 17일 울산에서 끝난 전국연극제에서 연극 '돼지비계' (오태영 작)로 최우수연기상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부패한 국회의원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굴렁쇠의 나이는 10년에 불과하지만 그 뿌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에 창단한 청봉극단이 모태가 됐다. 현재 각각 속초중 교감.속초 예총회장으로 있는 신원하.장규호씨가 주축이 된 청봉이 왕성하게 활동하다 82년 속초 연극협회로 흡수됐고, 이후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굴렁쇠를 만들게 됐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터전을 후배들이 다지고 있는 것이다.

창단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귀선씨는 서울예전을 졸업한 전문연극인. 서울에서 5년 정도 무대에 섰다가 90년 고향 속초로 내려와 지역연극 활성화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뭐랄까, 뿌리가 없다고나 할까. 속초에는 토박이가 거의 없죠. 반면 그만큼 아픔이 큰 곳입니다.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는 심정, 그 슬픔을 연극으로 치료하고 싶었어요. "

실향민의 고통을 그린 '그날 그날에' ,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비판한 '한씨연대기' , 실향 어부와 그 가족들의 애환을 담은 '그대여 또 다시 바다로 가거든' 등을 지속적으로 공연한 것은 이런 지역적 특수성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는 프로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서울의 전문가들이 자주 내려와 많은 지도를 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연출.기획력은 떨어질 수 있어도 연기만큼은 자신있습니다. 춘천.강릉.원주에도 극단이 많지만 열정만큼은 우리에 미치지 못합니다. 왜 바닷사람 기질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단 공연을 결정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듭니다."

굴렁쇠 단원은 현재 총 15명. 한해 평균 4~5차례 정기공연을 한다. 관광명소란 속초의 뒤안에 숨겨진 분단의 비극을 공연으로 정화하는 게 그들의 오늘이자 또 유일한 내일이다.

속초〓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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