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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65> 북한의 화폐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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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북한이 지난달 30일 옛 돈과 새 돈을 100대1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북한은 화폐제도를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폐 교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화폐정책의 변화는 한 나라 경제의 근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북한의 파격적 신구 화폐 교환 비율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주민들의 장롱 속에 든 돈을 끄집어내기 위한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과거 북한 화폐개혁을 되돌아보면서 이번 화폐개혁의 내용과 배경을 짚어봅니다.

정용수 기자

북한은 1947년 건국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화폐개혁을 단행한 이래 정치·경제적 분기점마다 화폐개혁을 해왔다. 사회주의 체제 정비, 오일 쇼크 대처, 후계체제 구축,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 등과 맞물려 있었다. 북한 당국은 이번 화폐개혁의 배경에 대해 “1990대 ‘고난의 행군’ 이후 공급이 정상화해 계획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구체적 내용은 ▶구권과 신권을 100대 1로 교환하고 ▶물가는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수준으로 낮추며 ▶임금은 화폐개혁 전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 내부에서 외화 사용이 금지된다.

인플레이션 잡고 산업자금 확보 노려

현재 이 조치로 북한 내부가 흉흉한 분위기라는 것이 국경 지역을 통해 흘러나오는 얘기다. 국정가격이 책정되지 않아 물물거래가 성행하고 시장 기능이 마비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자본가 세력의 반발도 있지만 혼란을 부를 정도는 아니라는 게 우리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화폐개혁은 인플레이션을 잡고 산업자금을 확보하며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북한이 92년 7월 실시한 4차 화폐개혁은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붕괴에 따른 경제 하강 국면에서 실시됐다. 동구권 붕괴로 원자재 등의 공급이 감소하면서 공장 가동률은 30% 이하로 떨어졌고 국영 상점을 통한 유통망이 무너졌다. 농민 시장을 비롯한 사경제가 확산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확산의 부작용을 차단하고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해 화폐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지난달 30일 화폐개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4차 화폐개혁을 통해 신구 화폐를 1대 1로 교환했다. 교환 한도는 세대당 300원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이 1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세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액수다. 나머지는 은행에 예금 후 지불하기로 했고 3만원 이상에 대해선 저금도 허용치 않았다.

오일 쇼크 땐 주민들 장롱 속 돈 끌어내 활용

79년 4월 단행한 3차 화폐개혁은 오일 쇼크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 73년 발생한 오일 쇼크로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상황에서 각 공장·기업소는 경제 규모의 확대에 따라 생산 목표가 늘어나자 중간재 및 원료 확보를 위해 상당량의 현금을 보유하려 했다. 그래서 북한 당국은 주민 등이 보유하고 있는 유휴 화폐를 끌어내려 했던 것이다. 당시 교환 비율은 1대 1이었고, 교환 한도는 없었다. 다만 저금을 적극 권장하거나 강제하고 있는 점이 이전 화폐 교환과 다른 점이다. 외국인이 사용할 수 있는 ‘외화와 바꾼 돈표’를 발행해 화폐 유통을 2원화한 점도 특징이다.

1947년엔 상공업자·종교단체 화폐 재산 몰수

1차와 2차 화폐개혁은 국가 수립과 사회주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했다. 해방 직후인 47년 12월 단행한 1차 화폐개혁은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법령을 통해 이뤄졌다. 당시 북한은 일제 강점기에 발행돼 남한에서도 통용되던 구조선은행권과 소련군 군표를 북조선중앙은행이 발행한 신권과 1대 1로 교환했다. 북한 당국은 “민주 개혁의 성과를 공고히 하고 나라의 정치적 독립을 재정적으로 확고히 담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됐다”(재정금융사전)고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일제의 잔재를 제거해 자주적인 재정 금융 토대를 마련하고 남한으로부터의 화폐 유입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치로 북한의 정권 수립(48년 9월 9일) 이전에 이미 남북 간에 화폐 분단이 이뤄진 셈이다. 당시 화폐개혁은 1대 1로 이뤄졌지만 소유 형태에 따라 교환 한도액에 차이가 있었다. 상공업자와 종교단체의 화폐 재산은 몰수했다.

59년의 2차 화폐개혁은 내각 결정 11호 ‘신화폐 발행에 대하여’를 통해 실시됐다. 화폐 교환 한도는 두지 않고 북조선중앙은행권 100원(구권)에 대해 조선중앙은행권 1원(신권)의 비율로 교환했다. 6·25전쟁 이후 전후 복구 3개년 계획과 농업과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돼 경제 성장이 일어나는 시점(58년)이었다.



북한 화폐 도안 살펴보니
1979년 처음 등장한 김일성 얼굴
새 5000원권서 웃는 표정으로 교체

이번에 새로 발행된 북한 화폐 도안의 특징은 김일성 전 주석의 얼굴이 최고액권인 5000원에만 등장했다는 점이다. 1992년 이후 발행한 지폐는 5000원·1000원·100원권에 김일성 얼굴이, 500원권에는 그의 집무실(금수산기념궁전)이 들어갔다. 새로 발행한 2000원권에는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가라고 주장하는 백두산 밀영이, 1000원권에는 김 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의 회령 생가가 담겼다.

북한 화폐의 도안은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47년 1차 화폐개혁 당시 발행한 지폐에는 해머를 어깨에 메고 있는 노동자와 밀집 모자를 쓰고 쟁기를 든 농민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모든 화폐에 공통으로 들어갔다. 국가 건설의 뜻이 내포돼 있다.

2차 화폐개혁 때의 도안은 상승세의 북한 경제를 반영한다는 지적들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넘치는 김책제철연합기업소 전경(100원)과 벼 이삭을 한아름 들고 있는 여인의 활짝 웃는 모습(50원)이 등장했다. 이 여인의 모습은 북한 화폐에 나온 어느 인물보다 표정이 밝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의 전문가는 “옛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1958년 주요 산업 국유화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시기”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 한 해 전에 단행한 1979년 3차 화폐개혁 때는 김일성이 처음으로 100원권 화폐에 등장했다. 이는 당시 김일성 시대가 완성됐음을 뜻한다. 동시에 후계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올 화폐 개혁 때의 신권에 김일성-김정숙-김정일 요소를 모두 담은 것은 후계 체제 구축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992년 화폐 도안은 김정일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그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그의 치적으로 꼽고 있는 서해갑문과 청류교를 넣었다. 2002년 7·1 조치 이후 새로 발행한 5000원권과 1000원권에는 김일성의 얼굴을 담아 1994년 사망한 그를 기리는 의도를 내비쳤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5000원권에 실린 김일성 사진은 이전 것과 달리 장례식 때 사용했던 활짝 웃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과 관련해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고액권은 2002년 7·1조치 이후 발행

북한 당국은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7·1 조치) 이후 1000원권과 5000원권을 새로 발행했다. 평균 임금과 물가를 올려 기존 최고액권이던 500원권으로는 물가 수준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00원권은 7·1 조치 직전에, 5000원권은 2002년 10월 중순 발행했다. 7·1 조치 이후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25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5000원은 노동자의 두 달치 월급에 해당한다. 한때 1만원권 지폐가 등장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 7·1조치 90년대 경제난으로 사경제가 활성화되고, 물가가 대폭 오르자 2002년 7월 1일 임금과 환율을 현실화한 경제관리 조치. 쌀값을 과거 8전에서 44원으로 인상하고 임금은 평균 150배 올렸다. 인센티브 제도를 확대하고, 계획작성을 지방과 기업에 하방하는 자율권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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