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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산책] 배구 거포 이경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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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약간의 수줍음을 타는 이경수의 미소. 코트 밖의 이경수에게서는 거포의 이미지를 좀체 찾아 보기 어렵다. 수원=신동연 기자

거대함과 조용함. 배구선수 이경수(25)에게서 받는 첫 느낌은 그렇다. 1m97cm의 키에 군더더기 없는 짧은 말투. 그래서 멜로 영화를 즐겨 보고, 최근 TV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빠졌던 부드러운 면모는 곧잘 가려진다.

코트에서는 적진을 폭격하듯 내리꽂는 강스파이크의 주인공이다. 특히 허리를 활처럼 휘면서 솟구쳐 올라 때리는 장쾌한 백어택은 전매특허다. 지난 2월 올스타전에서는 서브왕(시속 114km)에 올랐다. 강만수-하종화-신진식으로 이어진 한국 배구의 '거포'계보를 잇는 대들보임에 틀림없다. 그를 지난 23일 수원의 LG화재 연수원에서 만났다.

드래프트 파동 때 2년 허송 아픔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차례로 열린 2004 아시아남자배구 최강전(챌린지컵)에서 이경수는 1, 2차 대회 득점상을 휩쓸었다.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던 한국이 대회 통합 우승을 이뤄낸 건 그의 플레이가 안정을 되찾은 게 큰 요인일 터다. "오랫동안 쉬면서 훈련을 제대로 못했어요. 몸이 채 만들어지지 않아 팀에 기여하지 못했지요."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고공 스파이크를 소화할 튼튼한 하체를 만드느라 러닝과 다리 근력 강화에 집중합니다."

드래프트 파동 때문에 그는 2년 가까이 코트에 서지 못했다. 한양대 졸업 때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LG화재와 입단 계약을 하면서 시작된 파동. "계약금 때문이니 뭐니 추측이 많은데, 그냥 뛰고 싶은 팀에서 뛰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배구협회가 선수 등록을 받지 않아 소송이 이어졌고, LG화재는 그해 겨울리그에 불참했다. 사건은 1년8개월 만인 지난해 말에야 일단락됐다.

"너무도 아까운 시간이었죠. 매일 숙소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빈둥댔어요. 남들 경기하는 겨울에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다녔고요." 심심할 때마다 드라이브를 했더니 2년반 된 렉스턴의 주행거리가 7만7000㎞를 넘었다.

대전 유성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그는 처음엔 체력이 약해 고생했다. "키만 크고 핏기 없이 마른 애였거든요. 한양대에 들어가서 파워가 붙었어요. 대표팀을 오가며 체력훈련을 많이 한 덕분이었죠." 한양대 4년 때가 그가 생각하는 전성기다. 2001년 1월 29일 수퍼리그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선 혼자 51득점을 했다.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국내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이다.

그는 무뚝뚝한 성격을 조용했던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라고 했다. 부모가 모두 1급 시각장애인이다. "두 분 다 10대 때 사고로 시력을 잃으셨어요. 안마시술소에서 일하시면서 3남매를 키우셨죠. 가끔 경기장에 와서 응원도 하세요. 앞을 못 보셔도 제가 자랑스럽다고 해요."

시각장애 부모가 고생고생 키워

합숙 때문에 대전에 사는 가족들과는 잘 만나지 못한다. 대신 그는 최근 두 살 연상의 아가씨와 연애를 시작했다. 조그만 책상과 옷장이 전부인 구단 숙소에 유일한 장식품은 둘이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올 겨울 그의 전성기는 다시 꽃필 것 같다. 배구 프로리그 출범이 기다리고 있다. 신영철 LG화재 감독은 그에게 "경제적인 배구를 하라"고 조언한다. 배구도 더 요령 있게, 자기관리도 더 충실히 하라는 당부다.

수원=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이경수는 …

▶출생=1979년 4월 27일 대전

▶체격=1m97cm.90㎏

▶가족=이재원(59).김둘연(51)씨의 2남1녀 중 막내

▶학교=대전 유성초-중앙중-중앙고-한양대-동 대학원

▶소속=LG화재(2002년 1월~현재)

▶국가대표 경력=98년 5월~현재

▶주요 수상=2001.03 아시아선수권 우승,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KT&G V투어 2004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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