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발호하는 토착비리에 지방자치 뿌리째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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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토착비리가 지방자치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내년이면 15년째가 되는 우리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고질적인 토착비리 탓에 여전히 성공적인 착근(着根)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부정과 비리가 도를 넘어섰음은 최근 벌어진 사건들이 여실히 보여준다. 충남 홍성군청의 경우 전체 공무원의 16%인 108명이 예산 횡령에 가담하는 조직적 비리의 극치를 보였다. 이들은 자기 지갑 속 돈을 꺼내듯 공금을 유용해 유흥비로 탕진했다. 경기도 용인시청에서는 직원들의 근무평점을 조작하고 국·과장의 도장 32개를 위조·날인한 인사담당 공무원 2명이 구속됐으며 이들의 지시를 받던 공무원이 감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경찰은 8월 말부터 100일간 공직·토착 비리를 특별 단속해 482건 1648명의 비리 혐의를 적발했다. 2006년 출범한 민선 4기 기초지방자치단체장 230명 가운데 36명이 중도 하차한 것도 대부분 학연·지연·혈연이 얽히고설킨 토착비리가 주요 원인임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지역 토호비리를 근절하겠다고 천명한 데 이어 그제 법무부 새해 업무 보고 자리에서도 토착비리의 엄단을 다시 한번 지시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2012년까지 5대 고검과 주요 검찰청에 전담 수사팀을 만들어 토착비리를 색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사정당국의 칼날만으로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불과할 뿐 비리의 뿌리를 뽑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러 차례 지적했듯 원인 치료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자율적 감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먼저다. 지자체 비리가 감사 인력의 부족 탓은 아니다. 지자체의 자체 감사 인력은 광역단체의 경우 평균 39명, 기초단체는 8명꼴이다. 하지만 이들이 일반부서에서 충원되고 일정 기간 근무한 뒤 다시 수감기관인 일반부서로 돌아가는 순환보직제가 문제다.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동료 선·후배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27만 명이 넘는 지방공무원 중 공금 유용과 횡령, 증수뢰 등으로 자체 징계를 받은 사례가 지난해 118명, 2007년과 2006년 각각 78명에 불과한 것이 그 방증(傍證)이다.

이런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경기도 고양시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년부터 5급 감사담당관 자리를 행정안전부와 일대일 인사 교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럴 경우 온정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감사로 엄정한 공직 기강의 확립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인사교류제도를 일반부서로까지 확대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몇 개의 구(區)나 군(郡)을 묶어 권역별 순환인사를 함으로써 고인 물이 썩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감사 책임자를 개방형 또는 공모 직위로 뽑고 임기를 보장해 자체 감사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토착비리를 근절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