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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견문록' 번역판 펴낸 김호동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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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김호동(45)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국내 동양사학연구를 중국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확대해 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첫 세대다.

그는 아직 낯선 중앙아시아 역사를 한층 가깝게 해준다. 1998년 중앙아시아 역사 개설서인 르네 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를 번역했고 지난해에는 중앙아시아 소수민족사를 에세이로 쓴 '황하에서 천산까지' 를 펴냈다.

이번에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사계절.2만6천원)을 선보였으니 그의 중앙아시아 편력기는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동방견문록' 은 널리 알려진 고전 중 하나다. 그러나 이름은 알되 읽지는 않는 고전이란 '불명예' 를 안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국내에는 대부분 대중판으로 소개됐고 역자들이 인명.지명.사건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현실. 김교수가 새삼 동방견문록을 새롭게 번역하고 주석을 달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비록 동방견문록의 원본은 없지만 외국 학자들은 원본에 가까운 결정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걸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어요. 또 이름뿐인 고전을 새로 인식하고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

이 책은 세계 1백20여 종이 돌고 있을 정도로 난립해 있는 동방견문록 중 원본에 가장 가깝다는 프랑스 지리학회 영역판을 근거로 번역했다.

특히 견문록 이해의 걸림돌이었던 지명.인명.사건을 주석.각주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동방견문록은 미지 세계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이 충만한 책입니다. 자기가 사는 세상에 매몰되지 않는 시각을 갖고 있죠. 특히 13세기 유럽은 서구의 권위적 사고가 아직 성립되기 전인데 폴로의 서술에는 그런 경향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

김교수는 견문록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유는 고전이란 의미도 있지만 이질적인 문화를 여과없이 수용했다는 문화적 유연성을 높이 산다.

서구의 맹신적 도그마가 형성되기 전에 쓰여진 글이라 객관적 사료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물론 소설처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래서 번역에 더 정확성을 기해야했죠. 그러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이 어렵지만 높은 평가를 받듯 고전은 읽을수록 배어나는 맛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다음 학기에는 교환교수로 미국 하버드대에 갈 예정인 김교수는 지금 견문록과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으며 몽고제국사와 세계사를 포괄하고 있는 라시드 웃 딘의 '집사(集史)' 를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중앙아시아는 우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됐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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