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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놈사업 정부전략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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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물주가 창조한 인체 설계도가 마침내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3년 동안 30억달러를 들여 추진해 온 초거대 과학 프로젝트인 인체지놈 사업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30억쌍에 달하는 염기(□基) 서열이 낱낱이 밝혀짐으로써 인류는 사상 최초로 태어날 때 결정되는 유전학적 숙명을 인간의 의도대로 바꿀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암과 같은 난치병의 치료를 앞당기게 된 것은 물론 노화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조작을 통해 평균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일 수 있는 꿈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는 먼저 이같은 업적을 이룩한 18개국 1만여명의 과학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인체지놈 사업의 완성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지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과학의 가치는 최종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시민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인체지놈 사업이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돼 왔다면 앞으론 시민들이 연구의 방향 등 정책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난치병 치료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키나 피부색깔 등 부모에게 물려받은 생물학적 특성마저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지는 또다른 문제다.

작은 키와 검정색 피부를 열등 유전자로 볼 수 있는지, 그렇다면 열등 유전자는 인위적으로 도태돼도 되는지에 대한 시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둘째, 우리도 지놈 연구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체지놈 사업의 결과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무임승차란 있을 수 없다. 무료 공개의 배경엔 공개해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자신감과 앞으론 특허 인정을 통해 더 이상의 양보가 없다는 미국 등 선진국의 의도가 숨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지놈 기술을 활용한 생명공학기술(BT)은 차세대 핵심 산업이다. 그러나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T)과 달리 BT는 수십년간의 연구 역량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바이오 벤처의 열풍 등 모처럼 일기 시작한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단순히 이들 기업의 주가 올리기만으로 끝나선 안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선진국이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한 틈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장기적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바이오 벤처 등 민간기업과의 중복 투자를 피하고 당장 수익이 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는 기초 연구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돈은 넘쳐나지만 투자할 곳이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수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이들이 마음놓고 지놈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연구 인프라를 갖추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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