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6·25 총선 그후…] 上. 변화 꺼리는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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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의 자민.공명.보수당의 여 3당은 다음달 4일 제2기 모리 요시로(森喜朗)내각을 출범시킨다.

25일 총선에서 안정다수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의석을 적잖게 잃어 야당과의 주도권 싸움은 불가피하다.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와 여야의 진로를 상.하로 알아본다.

요란한 선거였다. 그러나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자민.공명.보수당 연립과 모리 요시로 내각은 유지됐다. 중도 보수의 정책도, 경기부양책도 계속될 것이다. 바뀐 거라곤 의석 변화다.

자민당의 의석이 줄었고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약진했다. 거대 여당엔 경고가 주어졌고 양당제의 싹이 보인 셈이다.

25일 일본 총선 결과에는 변화를 꺼린 민심이 짙게 배어 있다.

유권자들은 정권에 대한 불만.거부감 속에서도 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총리가 황국사관.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실언을 되풀이하고 유권자의 기권을 바라기까지 했는데도 21세기를 다시 그에게 맡겼다.

대도시 일부를 뺀 전 지역에서 열쇠를 쥔 것은 이른바 '3방(ばん)' 이었다.

지반(地盤).간판.가방의 끝말 발음이 모두 '방' 으로 끝나는데서 붙여진 말로 지역구 기반.지명도.자금을 일컫는다.

지방으로 갈수록 '3방' 의 신통함은 더 두드러졌다. 부모나 친척한테서 이 셋을 동시에 물려받은 세습 후보들은 초반에 대세를 결정지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 총리,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전 관방장관의 후계들은 첫 투표함이 열리면서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었다. 지방의 다른 세습후보들도 거의 같은 양상이었다.

자민당이 지역구에서 득표율 41%로 반수를 넘는 1백77석 (의석률 59%)을 확보한 것은 지방에서의 선전 때문이다.

뇌물 스캔들로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후보 2명도 거뜬히 당선됐다.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공공사업을 따내고, 지방자치단체.업계.각종단체는 의원의 지명도로 중앙과 끈을 대려는 유착구조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런 풍토속에서 정책논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21세기 일본의 진로나 정보화 혁명, 어린이 인구감소.고령화 대책, 사회보장 재원, 경기회복.재정개혁 문제는 쑥 들어갔다.

자민당의 케케묵은 선거운동 방식도 그대로였다. 정책논쟁보다 조직표 단속에만 열을 올렸다.

이번에는 공명당의 조직표 7백50만표를 활용하는 기민함도 보였다.

대도시 유권자, 특히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의 견제가 없었다면 선거는 더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한국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낙선운동은 단순한 실험으로 끝나고 말았다. 시민단체의 낙선 리스트는 유권자의 보수 성향만을 재확인해준 셈이다.

'시민연대 물결21' 의 낙선 리스트 상위 10명 중 낙선한 인물은 시라카와 가쓰히코(白川勝彦)전 자치상 한명뿐이었다.

시민단체의 산발적인 운동, 리스트 선정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낙선운동은 발도 못붙였다. 야당의 책임론도 나온다.

민주당은 자민당에 이은 제2당의 자리는 굳혔지만 자민당의 금권체질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로 모리 내각은 당분간 집권을 이어갈 전망이다. 자민당내 비주류의 반발이 있지만 최대 파벌인 오부치(小淵)파가 지지를 표명했고 연정 상대인 공명.보수당도 재집권을 바란다.

그러나 장기집권을 점치는 이는 당내에서조차 없다. 10%대로 내려앉은 내각 지지율이 올라갈 가능성도 없어 큰 부담이다. 그만큼 야당의 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내각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올 가을께 교체론이 급부상할 수도 있다.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를 모리 총리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이 당내 여론이다.

모리는 일단 요직인 대장상과 외상을 유임시켜 다음달의 오키나와(沖繩) 주요8개국(G8)정상회담 준비에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재집권은 총리 직선제 도입론에 큰 힘을 실어줄지 모른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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