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하림 '김현을 보내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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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별은 멀고

밤은 어둡고

얼굴은 붉었다

양수리 물가에 너를 묻어두고

고속버스를 타고 캄캄한 길을 달려

광주로 갔다 일하러 갔다 바람이

소리치며 창밖으로 달리고 반고비

나그네 길이라고 했던 네 책 표지가

유리창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탐욕스러운 플라타너스며 도로 표지판

푸른 벼들이

헤드라이트 속에서 무슨

음모라도 꾸미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 최하림(61)

'김현을 보내고' 중

이 땅의 문학의 산맥은 60년대에 와서 한번 불끈 일어서야 했다. 전통과 이데올로기에 닫혀 있던 문학은 4.19를 넘어서 새 사람들이 삽을 들고 나섰다.

최하림은 함께 새 땅을 일구었던 '김현을 보내고' 광주로 내려가면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짐짓 별, 바람, 푸른 벼들 따위로 감추고 있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끓어오르는 말을 삭히려드는 한 편의 시. 오늘은 김현이 간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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