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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셔너블 김장훈, 디자이너와의 십년 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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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김장훈은 무대 위에서 나팔바지에 프릴달린 블라우스를 입는 남자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교복으로 멋 내는데 선수였다. 이대앞 에이하우스라는 집에서 교복과 비슷한 옷감으로 아예 교복을 맞췄고, 나팔바지가 한참 유행일 땐 친구들과 바지 밑단을 13인치로 할 것이냐 14인치로 할 것이냐로 경쟁을 벌였다. 동대문을 뒤져 500원짜리 구제티셔츠를 사는 것이 취미일 정도로 옷에 관심이 많던 그는 심지어 대학에서 일반선택과목으로 패션을 들었을 정도.

그랬던 그가 우연히 조세현 사진작가를 통해 지춘희 디자이너를 만난 게 1998년. 프릴과 레이스 장식을 좋아하던 그는 처음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지춘희 디자이너에게 좋아하는 디자인 요소들을 마구 쏟아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심플했다. “응. 알았어!” 김장훈이 좋아하는 패션 디테일을 지춘희 디자이너의 스타일로 해석해 무대의상을 제작하는 것이 초기 이 둘의 패션 가공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지춘희 디자이너와 의상에 관한한 상의하지 않는다. 그녀가 알아서 만든 것들은 모두 그를 뒷목잡고 쓰러지게 만들 정도로 김장훈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지춘희 디자이너로 하여금 남자 옷을 만들도록 만든 김장훈. “언젠가 선생님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장훈아, 나는 네 옷이 안보였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네 노래에 집중할 수 있게 말이야.’그 말이 저에겐 감동이었어요.” 두 사람의 10년 넘은 우정에는 그야말로 ‘옷’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김장훈 스타일의 기부 그리고 동료의식

2007년 봄, KBS의 한 프로그램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주제가 재테크였는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그의 기부뉴스가 순식간에 인터넷 뉴스를 싹쓸이했다. “재테크는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제가 하는 재테크는 돈을 버는 재미, 돈을 쓰는 재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재미까지 있으니 이것만큼 확실한 재테크는 없는 거죠.”

김장훈 자신조차 정확히 얼마를 기부했는지 몰라 그 프로그램에서 계산해 9년 동안 30억 이라고 공개한 것이 이슈가 되었다. “그게 공개 되면서 저는 두렵기 시작했어요. 내가 그런 사회적인 이슈를 바라고 한 게 아닌데. 그 전까지만 해도 ‘김장훈’ 하면 공연이라는 단어가 훈장처럼 따라다녔거든요. 그날 이후로 저를 칭하는 수식어가 단번에 기부로 바뀌었던 거죠.

그렇게 열심히 공연했는데, 가수로서의 상실감이랄까. 또 주변의 시선이 괴로워서 홍대에서 술을 마시며 두문불출했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누군가가 나에게 음악을 좀 더 열심히 하라고 이런 일을 만든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3개월 만에 툭툭 털고 덤덤해지자며 일어나서 바로 전국 소극장 투어를 시작했죠.” 그 이후 매년 그는 물리적으로 공연 양을 늘렸다. 김장훈을 에너자이너처럼 뛰어다니게 만드는 것은 그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고, 그가 ‘천사’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기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관객이라고. 그래서 김장훈은 그 관객을 만나기 위해 무대 위에서 지치지 않을 체력을 만들고 건강을 챙기며 공연을 한다.

예전의 김장훈은 공연 리허설 때 성질부리는데 1인자였다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조금이라도 공연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뜯어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단다. 하지만 공연을 하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을 대하는 방법도 변했다. “처음에는 강경책이었다, 회유책이었다, 이제는 감동책이죠.” 동료의식이 중요하다는 김장훈이 선택한 감동책의 일환으로 지난 추석에는 30만원짜리 한우를 백 명이 넘는 전 스태프에게 돌렸고, 제주도 공연 때는 자비를 들여 스태프의 가족들을 제주도로 초대했다.

이렇게 애정표현이 확실한 남자가 또 있을까? 어떤 일을 벌여도 통이 크고 빠른 추진력을 보이는 그가 사랑에 빠지면 정말 ‘진한 로맨스’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노래와 기부 말고 그 다음으로 잘하는 게 바로 멸치국수를 만드는 일과 다림질이라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남편감이 있을까! “결혼은 잘 모르겠지만 연애는 죽을 때까지 해야죠. 그런데 고민은 여자를 만나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손을 잡고…이런 진행을 잘 못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이상형은 고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여자들이 다 나름대로의 이유로 매력적으로 보여서 문제죠.” 하지만 당분간 연애는 힘들어 보일 듯하다. 내년 김장훈 싸이의 완타치 공연이 끝나면 중국을 시작으로 유럽을 돌며 1년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여성중앙 이미정 기자
사진 : 이건호 (Studio dhal)
의상 : 미스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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