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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난해 56만 명이 해외로 의료 관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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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네바다주 관광도시 리노에 사는 존 프리먼(61)은 심장질환으로 심혈관 이식수술을 받아야 했다. 퇴직 후 한 달에 300달러(약 36만원)의 보험료를 감당하기 힘들어 건강보험에 들지 않은 그가 미국에서 수술받으려면 14만4000달러(약 1억7000만원)를 내야 했다. 그는 수술 뒤 파산하거나 수술받지 않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의료관광업체를 소개해줬다. 그는 올 4월 터키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항공료 등에 들어간 돈은 1만8000달러(약 2100만원)였다. 미국 수술비의 1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인도에서 같은 수술을 했다면 미국의 6% 수준인 8500달러(약 1000만원)만 내면 된다. 그는 “나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료관광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의료비 부담에 의료관광=미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는 지난해 해외에서 치료를 받은 미국인을 56만 명으로 추산했다고 미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21일 보도했다.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반면 치료를 위해 미국을 찾은 외국인은 8만5000명에 그쳤다. 딜로이트는 2012년에는 미국인 의료관광객이 지난해의 세 배 수준인 1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영리 건강보험 조사업체인 카이저가족재단에 따르면 미국의 4인 가족 기준 평균 건강보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인 연 1만3375달러에 이른다.

미 의료비도 다른 나라에 비해 최고 17배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적인 병원·보험사·관광업체 등이 회원으로 있는 의료관광협회(MTA)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의 임플란트 비용은 1000달러로 미국(2000~1만 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주름살 제거수술은 싱가포르에서 미국(1만5000달러)의 25% 수준인 4000달러에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가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 의료비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에서는 의료관광을 포함하는 건강보험이 확산되고 있다. 노던캘리포니아 카지노와 메인주의 대형 수퍼마켓 체인은 종업원들에게 의료관광을 선택할 수 있는 건강보험을 제공한다. 스위스 대형 보험사인 스위스재보험은 기업체들에 이 같은 건강보험을 시범적으로 팔고 있다. 미 기업들은 미국보다 해외에서 치료받는 보험을 선택하는 것이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료관광 유치 경쟁=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중남미 국가들은 의료관광이 돈이 된다고 보고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의료서비스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정하고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했다.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파크웨이헬스 계열 병원들은 연간 24만 명을 유치해 싱가포르 의료관광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가격은 비싸지만 사생활 보호와 세심한 서비스로 전 세계 부자들이 즐겨 찾는다. 인도·말레이시아 등도 값싼 의료 인력과 영어 구사력 등을 무기로 해외 환자 유치에 활발히 나선다.

한국도 올해 5만 명 수준인 해외 의료관광객을 2013년에는 2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정했다. 그러나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고, 규제도 적지 않아 목표 달성은 미지수다. 해외 환자를 유치하려면 외국인 의사를 데려와야 하는데 현행 의료법은 외국인 의사의 의료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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