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저 정도라면 나도…?

중앙일보

입력

Trend y 트렌드에도 이유가 있다? 왜(Why)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한 우리 주변의 ‘트렌드’ 뒤집어보기.
⑤드라마 속 완판의 비결

“이병헌 코트 사고 싶은데요?” “황정음 가방은 어디서 사나요?” “김소연 머리는 어떻게 하죠?”최근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질문들이다. 누군가 또 완판남·완판녀에 등극한 모양이다.

‘완판녀’란 드라마 등 방송에 착용하고 나온 제품이 다 팔린 여자 연예인을 일컫는 신조어다. ‘품절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던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김남주, 완판녀에 이어 네티즌들로부터 ‘인상녀(인상이 좋다는 뜻)’란 호칭을 받은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한효주, 구준표의 연인으로 주가를 올린 ‘꽃보다 남자’의 구혜선 등이 올 한해 높은 시청률과 브랜드 완판을 거머쥔 영예의 주인공들이다.

완판녀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스타’여야 한다. 물론 방영 횟수를 거듭하며 인기를 얻어 스타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출연한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이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드라마가 뜨면 온갖 브랜드에서 PPL을 하려고 달려든다”고 귀띔했다.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의 연기력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완판녀로 불리는 연예인 모두가 이전부터 ‘패션 아이콘’으로 널리 알려졌던 것은 아니다.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윤은혜는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완판 아이템을 배출하지 못했다. 단지 그의 스타일을 유행시켰을 뿐이다. ‘스타일’의 김혜수도 마찬가지다. 물론 윤은혜나 김혜수가 선보인 옷들이 완판하기엔 너무 고가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완판에는 ‘패셔너블’보다‘웨어러블(실제 착용하기 무난한)’이란 키워드가 작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주 종영한 드라마 ‘아이리스’도 비슷한 예다. 아이리스는 화려한 패션이 선보이지 않는 스파이 물이었다. 그런데 ‘스파이 패션’이 시청자(혹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병헌(사진)이 광화문 테러 장면에서 입고 나온 밀리터리 풍의 데님 재킷·모자·워커 등이 완판됐고, 총에 맞아 피가 묻은 민소매 티셔츠는 ‘피 나시’라는 이름으로 동대문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들이 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은 것도 아이리스의 완판 기록에 도움이 됐다는 의견도 있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매 장면마다 배우가 옷과 액세서리를 바꾸는 데 반해, 아이리스는 극 전개상 주인공들이 몇 회 연속 같은 옷을 입는 모습이 종종 방영됐다. 마치 일본드라마 ‘히어로’에서 주인공 기무라 타쿠야가 극중 내내 입었던 갈색 패딩 점퍼와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오다 유지가 매일 입는 카키색 트렌치 코트처럼 극중 장기 착용되는 패션 아이템은 배우의 캐릭터를 살리면서 동시에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여기에는 배우의 고집도 한 몫한다. 배우가 캐릭터에 맞는다고 판단하는 경우 드라마를 찍는 동안 장기 착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완판의 중심에는 ‘연예인’이 있다. 한 홍보대행사 직원은 “한국에서는 누가 입은 옷, 누가 든 가방 등 스타라는 매개체가 제품의 판매량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강남 차병원 정신과 서호석 교수는 “이런 현상은 연예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라며 “연예계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과장되게 자신을 표현하고 과시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세라 기자 >
[사진제공= 태원 엔터테인먼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