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의 '포괄적 비보도' 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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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준영(朴晙瑩)청와대 대변인은 6월 20일자 본지 1면의 '북, 노동당 규약 개정 약속' 기사와 관련해 중앙일보 청와대 담당기자의 청와대 출입을 정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그는 "남북 합의사항은 포괄적인 오프(비보도)를 지켜달라" 고 언론사에 주문하면서 "언론 보도로 인해 문제가 파생하고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죄를 짓는 것" 이라고 출입정지 조치를 취한 이유를 밝혔다.

굳이 朴대변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언론보도로 인해 국익 또는 남북관계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점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에 속한다.

특히 본지는 남북문제에 관한 한 이 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추구해 왔다. 우리는 청와대가 취한 기자 출입정지 조치에 대해 언론사가 단순히 감정적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생겨난 새로운 남북간 협력 환경에서 언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자세에서 이 문제를 짚어봐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

우선 '포괄적 비보도' 요청이란 것은 언론자유를 중시하는 자유민주국가의 정부로선 있을 수 없는 조처라고 본다.

우리는 일찍이 남북 정상회담이 투명한 협의과정을 거쳐야함을 강조해 왔다. 지나친 비밀회담은 국민적 합의를 그르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협의과정엔 당장 발표할 수 없는 사안도 있고 아직 완전 합의를 보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는 회담 당사자들이 입을 굳게 닫고 있어야 한다. 야당 대표와 언론사 사장들에겐 '비보도' 를 전제로 설명하면서 기자가 제3의 뉴스원을 통해 취득한 기사를 문제삼아 출입정지까지 시킨다면 이는 온당한 처사가 될 수 없다.

나쁘게 보면 정략적 차원에서 대북 정보가 소수에게만 알려지고 정작 사실을 알아야 하고 합의를 구해야할 국민은 까맣게 모르는 기만에 빠질 위험이 있다.

또 남북 합의사항에 관한 모든 것을 비보도 원칙으로 한다면 언론은 언제나 관급성(官給性)기사에만 의존하는 전체주의국가의 언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남북 협상이 중요하다지만 언론 전체에 재갈을 물리면서까지 비밀협상과 회담을 한다면 이는 국민이 오히려 믿지 않는 가공할 불신 풍조를 조장할 수있다.

대남 적화통일의 근거가 될 북측 노동당 규약을 먼저 개정하고 이어 남측 국가보안법을 개폐한다는 논의를 했다면 이야말로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협력을 가시화한 가장 빛나는 협상 결과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약속단계까지 가지 않고 남북간 동의 수준만 됐더라도 이는 국민 모두에게 알리고 우리의 보안법 개정을 손질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보도는 이런 취지에서 국민에게 알리고 합의를 도출하자는 뜻에서였다. 이런 보도내용을 '민족적 죄' 운운하면서 매도하는 것은 자유언론 국가의 대통령실 대변인으로선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망언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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