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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이라크 전황과 미국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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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이후 1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가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과 이라크인 100명 이상이 인질로 납치됐다. 이라크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기 어렵다. 연일 일어나는 폭력사태를 볼 때 바그다드를 시작으로 중동에 민주주의를 가져오겠다는 미국의 야망은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다소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1000명이란 사망자 숫자는 굉장히 많은 것이다. 특히 오늘날 이라크의 불안정한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다. 하지만 냉소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숫자는 부시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할 정도로 많지는 않다.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5만명의 미군이 사망한 베트남 전쟁과 대조적이다. 징병이 끝난 시점에서 미국의 대학들은 비교적 침묵할 것으로 보인다. 9.11 테러는 비록 사담 후세인 정권과 실제로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그 이후 미국은 지금까지 전쟁 중이다. 사건 이후 미국은 세계를 보는 시각을 바꾸었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국외에서 군사개입을 한다면 이는 무엇보다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수정주의적 정책이 우세하더라도 미국인 희생자 수는 '적당한' 선에서 유지돼야 한다. 이는 단지 선거 때문만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이며 정치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라크 땅에서 미군은 질서와 안정을 확립하기보다 자신을 보호하는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이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미군은 또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이라크인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이는 미군의 현지 평화 확립에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미군은 이라크인과 비(非)이라크인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후자는 테러리스트를 지칭한다.

이런 맥락에서 워싱턴이 쓸 수 있는 정책은 매우 제한적이다. 미군의 철수는 참혹한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패배를 승인하는 것이다. 또한 이라크의 재건이라는 전후 전략이 잘못된 가정과 즉흥적인 전략에 근거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더 많이 파병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를 약화시키고 베트남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할 것이다.

이라크 사회는 절망.피로.항거 등으로 내파(內破)의 위기에 있다. 현재 이라크 정부는 보통선거를 실시할 정치적 정통성도 없고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다. 신뢰는 안정과 질서가 확립돼야 그 결과로 생기게 된다. 많은 이슬람 학자는 지하드(성전)가 오히려 이슬람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무장단체들이 행하는 성전이 이슬람권 내 내부갈등을 야기한다는 얘기다.

특히 과격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의 성전을 주장하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시아파 내부의 충돌도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내 임무는 민족 간 분열을 조장하기보다는 그 폭을 좁히는 것이다. 이라크가 레바논과 같이 분열된다면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은 실패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점령통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수니파 우월주의는 상대적으로 시아파와 쿠르드족을 배척해왔다. 이는 여전히 민족과 정파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하나의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세상에서 가장 가혹했던 정권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수니파 근거지인 팔루자 근방에 새로운 테러리스트의 성소(聖所)를 만들었다. 9.11 테러에 대한 즉각적인 반격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부로서는 역설적인 결과다.

이라크로 '주의가 분산돼'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축소한 '미숙함'의 결과로 탈레반 반군은 아프가니스탄 일부 지역에서 다시 활동 중이다. 오늘날 세계는 과거보다 덜 위험해지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다음 시한은 2005년 1월의 선거가 될 것이다. 설사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더라도 이라크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도미니크 모이시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고문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