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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진타오 시대] 4·끝 파워 엘리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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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후진타오(胡錦濤) 시대를 이끌 파워 엘리트는 장쩌민(江澤民)의 상하이방(上海幇)처럼 특정 지역 인물들이 아닐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후 주석의 최대 인맥은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이라고 명보(明報)의 전 편집인 딩왕(丁望)은 지목했다. "공청단은 후 주석이 중앙에서 처음 활동한 무대이자 자신의 정치 인맥을 구축하기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퇀파이(團派)'는 50년대에 출생한 40~50대가 주류다. 고학력에 현장 경험까지 갖춰 홍(紅.이념성)과 전(專.전문성)을 겸비했다. 퇀파이가 지방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다. 후가 국가부주석으로 권력의 지분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 결과 지금은 31개의 성(省).시(市).자치구 중 11개 지역을 차지했다.

그중 허난(河南).장쑤(江蘇)성의 당위(黨委)서기를 맡은 리커창(李克强).리위안차오(李源潮)가 선두그룹이다. 멍쉐눙(孟學農.53) 전 베이징(北京)시장은 지난해 봄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은폐의 책임을 물어 경질됐으나 올해 경제 관련 부서에 조용히 복귀했다. 중앙 무대에도 퇀파이가 포진했다. 장관급 인사로는 리즈룬(李至倫) 감찰부장을 비롯해 톈충밍(田聰明) 신화사 사장, 리더주(李德洙) 국가민족위 주임, 류옌둥(劉延東) 당 통일전선부장 등이 손꼽힌다.

링지화(令計劃.47) 중앙판공청 부주임과 판웨(潘岳.45) 국가발전개혁위 부주임은 숨은 실세다. 링지화 부주임은 후 주석의 해외 순방 때마다 그림자처럼 수행한다. 2년 전에 열린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에서 당 중앙 후보위원(158명)으로 뛰어올랐다.

판웨 부주임은 군 원로인 류화칭(劉華淸)의 사위로 서부대개발과 경제개혁 분야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후 주석이 10년간 교장을 맡았던 중앙당교(黨校)도 있다. 중앙당교에서 교육받으며 후 주석의 정치 개혁과 균형 성장론에 공감하게 된 세력이 국무원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총리 역시 후 주석과 정책 성향이 비슷하다.

반면 군부엔 후 주석의 세력이 아직 미약하다. 장 전 주석과 상하이방의 감시와 견제가 심했기 때문이다. 8명에서 11명으로 늘어난 중앙군사위에도 후 주석의 측근은 없다. 장쩌민 전 주석은 지난 6월 중앙군사위 주석직 퇴임을 앞두고 15명에게 상장(上將.대장 격)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현역 상장이 35명 안팎임을 감안할 때 무더기 승진 인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한 마디로 군권 이양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다만 3명의 중앙군사위 부주석 중 한 명인 차오강촨(曺剛川)부주석은 친(親) 후진타오 계열로 분류된다.

후 주석이 졸업한 칭화(淸華)대 출신 역시 결집력은 아직 약하다. 지난 50년대 이후 졸업생 가운데 차관급 이상만 300명이 넘는다고 하나 왕수청(汪恕誠)수리부장 등이 후 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데 그친다. 후 주석으로선 당.정.군에 지지세력을 대거 배치하려면 제17기 전국대표대회가 열리는 2007년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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