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애 안 낳는 사회] 6. 선택과 집중 - 하나도 벅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애 낳기가 겁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계동 아파트단지 옆에 밀집해 있는 학원가 모습. 김태성 기자

"정말 교육시키기 힘들어 아이를 하나만 키워요. 남편은 처음에 이해를 못 했지만 사정을 안 뒤부터는 두 손을 들었죠."

아홉살짜리 아들을 둔 주부 최모(37)씨. 애가 다섯살 때부터 한달에 89만원씩을 내고 영어 유치원을 보냈다. 주변의 눈총까지 받으며 극성스럽게 새벽에 줄을 서서 등록했다. 그는 서울 송파구 집에서 서초구 유치원까지 2년 넘게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학교에 가면 한숨 돌리겠지 했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애를 오후만 되면 차에 태우고 학원 두세곳을 순례한다. 최씨가 요즘 사교육비로 쓰는 돈은 한달에 80만원 안팎. 취학 전보다 거의 줄지 않았다. 정작 목돈이 드는 곳은 따로 있다. 지난 여름에 130만원짜리 영어캠프를 보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해외캠프를 보낼 생각이다. 애 혼자 보내기가 찜찜해 함께 가려는데 500만~600만원이 든다. 최씨는 "학교는 안 보내도 학원은 보내야 하는 게 요즘 엄마들 생각"이라고 했다. 치솟는 사교육비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박재환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종 조사를 보면 남녀 모두 실제로 낳는 아이 수는 희망자녀 수보다 1명 정도 적다"며 "주로 경제적인 이유라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기교육 등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선택과 집중, 하나만 낳는다=한국노동연구원(노동패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13.1%로 작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교육비가 매년 급증한다는 사실이다.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2002년의 경우 전년보다 24.9%나 뛰었다. 지역별로 보면 신도시는 110.6%, 서울 강남은 73.7%나 급등했다. 반면 경기 불황 등으로 임금 증가율은 같은 기간 9.7%로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부모가 감당해야 할 실제 사교육비가 해가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중3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주부 임모(42)씨. 아이 둘에 봉투만 8개인 학원비로 매달 200만원씩 든다고 했다.

"학원비 내는 전날이면 잠이 안 와요. 그런데도 딸은 '엄마, 학원비 적게 들어 고맙지'라고 말해요. 모든 걸 최고로만 해주는 외동딸 친구와 비교하는 거죠."

이런 말을 들으면 임씨는 화가 난다고 했다.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처진다는 설명이다. 한명만 낳아 최고로 키우는 '명품 교육' 때문이다. 명품교육은 걸음마 때부터 '지능발달 기관교육→영어유치원→사립초등학교→해외 연수→유학'의 단계를 거친다. 웬만한 집 빼고는 자식 둘을 명품교육시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숙제도, 현장학습도 엄마 몫=경기도 수원에서 아들 둘을 키우는 맞벌이 주부 강모(37)씨. 그는 매일 아이들 숙제를 검사해 주고, 현장학습을 따라다니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다. 대부분 서울에 서 열리는 전시회.연주회 등을 다녀와야 하는 현장학습은 엄마가 데려가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잘 가르치는 강사를 알아내 학원을 옮겨다니는 것도 엄마의 노력에 달려 있다. "부모가 학원이나 입시 정보에 둔하거나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처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이 엄마들의 이야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문희 연구위원은 "부모가 자녀에게 무한책임을 지는 우리나라 사회구조도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우선 무너진 공교육, 과열된 사교육 등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특별 취재팀=김시래 팀장,신창운 여론조사전문위원,문경란 여성전문기자,신성식.신예리.박혜민.김영훈.김정하.하현옥 기자<srkim@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