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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박근혜 대표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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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右)이 22일 영등포 당사에서 새 수도 이전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중앙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 22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표(右)가 이한구 정책위의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한나라당은 22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당론을 확정하기 위해 의총을 열었다. 오전.오후 두차례에 걸쳐 약 다섯시간 동안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수도 이전 반대'라는 입장만 확인하고 끝난 것이다.

당 수도이전 특위는 이날 "정부가 밀어붙이는 천도(遷都)를 반대한다"면서 충청권에 행정기능의 일부만 이전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의 용역을 거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의원은 "반대하면 그만이지 무슨 대안이냐"며 특위안을 당론으로 정하는 데 반발했다. 배일도 의원은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확실히 반대하자"고 했고, 심재철 의원은 "특위안이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나온 것이므로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그래서 이날 당론을 확정하려던 지도부의 계획은 무산됐다. 박근혜 대표의 기자회견도 취소됐다.

박 대표는 지도력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추석 전에 당론을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당에선 "박 대표가 당내 이견을 조정하는 능력에서 한계를 보인 것 아니냐"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관련해서도 박 대표는 당내 보수파와 비주류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가 체제 수호를 전제로 보안법 중 '정부 참칭'대목을 없앨 수도 있다고 한 데 대해 보수파 등이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박 대표는 의총이 시작되자 해명성 발언을 했다. 그는 "보안법 폐지엔 절대 반대하고 개정은 할 수 있다는 입장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정부 참칭' 대목도 당 안에서 찬반이 있으니 중지를 모으겠다고 한 것인데 사실과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해명을 하고 나선 것은 불만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자신의 반대파가 이회창 전 총재의 영향력을 활용해 세력을 키워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뜻도 있다는 게 당직자들의 분석이다. 이 전 총재는 21일 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보안법은 아직 폐지할 때가 아니며, 한나라당 의원 121명 전원은 의원직을 사퇴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비주류와 보수파는 "옳은 말씀"이라고 반색했다. 박 대표를 흔들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잡았다고 본 것이다.

여권은 이 전 총재의 발언을 "보수층의 결집을 자극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맹비난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느닷없이 녹슨 창을 꺼내 정치를 다시 싸움판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박 대표는 태상왕(이 전 총재)의 수렴청정을 뿌리치고 제 갈 길을 가야 한다"며 박 대표와 이 전 총재 사이를 벌리려 했다.

이가영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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