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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뮤직 다이어리] 프로디지 'Always Outnumbere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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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997년은 90년대 대중음악이 절정에 달했던 해다. 쟁쟁한 뮤지션들이 명반을 쏟아내며 마치 백가쟁명시대의 경합을 연상케 했다. 프로디지의 'Fat Of The Land'는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와 함께 그 백가쟁명의 정점에 있던 앨범이다. 테크노에 적대적이던 록 팬들도 이 새로운 사운드에 기꺼이 열광했다.

프로디지의 음악이 댄스 클럽보다는 거대한 록 페스티벌에서 더 큰 울림을 안겨준 것도 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프로디지 이후 케미컬 브러더스.팻 보이 슬림 등 일련의 테크노 밴드들이 속속 걸작을 만들어내며 테크노의 전성시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 했거늘, 테크노의 전성기는 채 10년을 가지 못하는 것 같다. 프로디지는 97년 이후 계속 침묵을 지켰다. 테크노의 퇴조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그런 오랜 침묵 끝에 'Always Outnumbered, Never Outgunned'의 발매소식이 전해졌고 대중들의 기대가 쏠리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앨범은 오랜 기다림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물론 록과 테크노.힙합 등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사운드는 당대 제일의 자극을 뿜어낸다. 게다가 오아시스의 멤버 리엄 겔러거와 노엘 겔러거, 여배우 줄리엣 루이스를 비롯한 화려한 게스트가 프로디지에서 혼자 남은 리엄 하울렛을 도와 음악을 다양한 색으로 칠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로마시대로 가져가 칼리굴라 황제의 음란한 연회에 틀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격정적이고 선정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12곡의 수록곡이 'Fat Of The Land' 앨범만큼 일관된 에너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맛 없는 음식점이 괜스레 메뉴만 요란하듯 이 앨범이 명확한 특색 없이 이런 저런 장르의 나열에 그치는 것은 오랜 팬으로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요컨대 자극은 넘쳐나되 에너지는 없는 것이다. 97년의 충격을 생각해 보면 본말이 전도돼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프로디지가 이 앨범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돼버렸다.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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