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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남북시대] 3. 북에 미칠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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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정상회담이 서울에 준 충격이 회자(膾炙)되는 가운데 북한 내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북의 경제정책.대외관계에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지도자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유일(唯一)체제' 이기 때문에 '잘 살아보세' 의 합창이 드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모기장을 튼튼히 치면서 개방한다' 는 생각을 갖고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 주민들의 의식변화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 경제정책〓북한은 '강성대국' 건설의 기치 아래 경제재건에 주력하겠다는 정책을 갖고 있다.

인프라 확충은 물론이고 자원.물자.기술의 도입이 필요한 형편이다.

金위원장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응했던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했다.

다만 金위원장이 '중국식 개혁' 으로 나아갈지, 북한이 즐겨 말하는 '우리식 개선' 에 그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아마도 후자를 유지하면서 전자의 계기를 포착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남북 경협 확대는 북한의 경제 재건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金위원장은 지금의 경제구조와 정책으로는 주민 살림의 주름살을 펴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이번에 대외사정에 밝고 실리적인 자세를 갖고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차원에서 남측 지원이 들어간다면 이것이 음으로 양으로 북한의 경제운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화해.신뢰를 바탕으로 남측 자본.기술.설비가 들어가고 인프라가 정비되면 북한 경제의 재건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경협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면 북한 스스로 신(新)경제계획 수립에 나설 계기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계획 해당기간에 유입될 물자.설비.자본.기술의 총량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경제구조 특성상 자립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외부지원의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는 전문가들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 공존.평화무드〓북한의 보도매체들은 6.15 공동선언이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 성업을 이룩하고 부강조국을 건설하려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염원을 반영한 것" 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나타난 키워드가 민족대단결.통일.부강조국 세 가지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은 북한당국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안보적 위협이 줄어든 바탕에서 남북 경협을 통해 경제재건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는 논리로 주민들에게 설명할 것 같다.

金위원장은 金대통령과의 15일 오찬에 국방위원을 비롯한 군 수뇌부 인사들에게 양복차림으로 참석하도록 했으며 군 2인자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 총정치국장에게 인사말을 하게 하는 등 의도적으로 평화무드 조성에 노력했다.

그뿐 아니라 휴전선 일대의 비방방송을 중지시키고 경의선 철도 복원 공사에 군인들을 투입할 뜻도 밝혔다.

이 모든 조치는 평화무드를 타고 경제재건에 진력하겠다는 뜻이다.

◇ 대외관계〓金위원장이 이번에 개방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함으로써 북한의 대외관계는 더욱 활성화하는 전기를 맞게 됐다.

이미 이탈리아와 수교하고 호주와의 국교를 회복한 데 이어 7월에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가입할 예정이다.

북한은 아태지역 국가.유럽연합(EU)과의 관계강화에 힘쓰는 한편 아시아개발은행(ADB).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에 가입할 뜻도 굳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안보.경제 두 측면에서 국제사회에 적극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며, 金위원장 자신이 국제사회에 노출되는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金위원장은 교황을 평양에 초청할 의사를 밝힘으로써 대외 개방 이미지를 확대해 나가려 한다.

◇ 주민 영향〓북한 조선중앙TV의 오후 8시 보도는 산업현장에서 언제나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뭔가 성과를 거뒀다는 말을 반복 사용하고 있다.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자력갱생' '간고분투' 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정신무장 필요성 때문에 이런 분위기는 대외환경이 다소 나아지더라도 계속될 것 같다.

경제정책의 변화와 대외관계의 활성화에 따라 두 가지 측면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하나는 경제영역의 변화가 사회.정치적 영역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하나는 대외개방 정보유입에 따른 주민의식의 변화다.

그러나 '모기장' 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 역시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더욱이 남북관계의 개선 분위기를 타고 북한의 '유일체제' 가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별로 현실성이 없을 것 같다.

유영구 북한문제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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