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100일 하토야마 정권 잇단 악재로 입지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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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5일로 출범 100일째를 맞게 되는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40%대를 기록했다. 지지(時事)통신이 지난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하토야마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46.8%에 그쳤다. 9월 집권 직후 하토야마 총리가 이끄는 내각 지지율은 역대 셋째로 높은 75%에 달했다. 석 달 만에 30%포인트 가까이 까먹은 것이다. 반면 하토야마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민주당 간사장은 최근 중국과 한국을 잇따라 방문한 데 이어 집권당의 총선 공약을 대거 유보하는 정책을 건의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총리 결단력 부족이 문제=최근 미·일 간 논란이 되고 있는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에 대한 하토야마 총리의 결단력 부족이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후텐마 비행장 이전 지역에 대한 결론을 내년으로 미루기로 한 결정에 대해 “잘못됐다”는 응답이 51%로 과반수를 차지했고, “미·일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답변도 68%에 달했다. 총리가 어머니의 돈을 정치헌금으로 사용한 데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점, 8·30 총선 공약 유보, 국민신당·사민당과 구성한 연립정권 내부 마찰 등의 문제도 악재로 작용했다.

하토야마 정권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가장 큰 악재는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다. 소비자 물가는 10월까지 8개월 연속 하락했다. 물건이 팔리지 않자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내리고 있는데도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최악의 경기침체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주요 정책을 둘러싸고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각료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우유부단함이 부각되고 있다.

◆최대 주주 오자와와도 갈등=지난주엔 총선 공약 이행을 둘러싸고 오자와 간사장과 하토야마 총리 사이에 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오자와 간사장이 16일 “휘발유세 등에 부과하는 잠정세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하토야마 총리가 다음 날 “잠정세율을 폐지하기로 한 것은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맞선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불쾌감을 느낀 오자와는 총리와 연립여당 간사장이 만나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 간부의 설득으로 회의실에 들어선 뒤에도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오자와 간사장과 하토야마 총리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며 당시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의 한 간부는 “신규 국채 발행을 44조 엔(약 570조원) 이하로 억제하려는 총리를 돕기 위해 오자와가 총선 공약을 뒤집었는데도 총리가 이를 알아주지 않는 데 화가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내년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내각 지지율이 계속 추락할 경우 오자와 간사장이 차기 총리를 맡을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이 부상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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