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명의가 추천한 명의] 김선한 고려대 안암병원 외과 교수→홍경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예부터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 하지만 정신병만큼은 아직도 이웃은 물론 친척이나 친구에게도 ‘쉬쉬’하며 지낸다. 병 자체를 원죄의 업보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이 방치되고 헛된 치료를 받는 일도 허다한 이유다. 이러는 사이 환자는 점점 더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나타내고 가족은 ‘정신병은 어차피 못 고칠 불치병’이란 생각을 고착화한다. 하지만 모든 불행은 병의 정체를 몰라 초래되는 오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홍경수 교수는 고통에 갇혀 사는 정신병 환자와 보호자에게 과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20년을 한결같이 매진해 온 정신의학자다.

‘똑같은 상황에서 왜 A는 이런 생각을 하고 B는 저런 생각을 할까?’ 곤란에 처했을 때 ‘이 정도 고통이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란 생각을 하는 사람의 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릴 때부터 인간의 심리가 궁금했던 홍경수 학생은 생명과학자인 부친의 조언에 따라 일찌감치 정신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생은 됐지만 본과 3학년 때 정신과 병동 실습을 돌 때까지는 그녀 역시 정신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막상 환자를 직접 대면하면서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제때 치료받으면 대부분 정상생활

“공부를 곧잘 했던 명문대생이 정신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어요. 발병 초기에 착했던 아들이 남을 의심하고 엉뚱한 말과 행동을 했지만 병 때문이란 생각을 못했던 부모는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며 환자만 한없이 비난했더라고요. 결국 아들이 학교생활을 못하게 된 뒤에야 부모는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다행히 20년 전에도 정신병 치료제가 있었기에 환자의 병적인 생각은 상당히 교정됐어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정신과 약의 신경계 부작용이 심해 언뜻 환자를 보면 ‘바보가 됐구나’란 느낌을 받게 마련이었어요. 걸음걸이도 느려지고 멍한 눈빛으로 침을 흘리는 식의 부작용 탓이죠.”

자연히 정신병을 치료한 뒤에도 환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지 못했다. 병실에서 만났던 그 학생 역시 제정신은 찾았지만 학업은 포기해야만 했다.

이 환자를 계기로 홍 교수는 부작용 없는 약물 치료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했고, 성균관대의대 교수가 된 이후에도 줄곧 이 분야를 연구했다. 최근 홍 교수는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 서울아산병원 주연호 교수 등과 공동 연구를 해 세계 최초로 정신과 약물 부작용으로 초래되는 강박증의 특징에 관한 유전체 분석에 성공했다. 이 연구의 가치를 인정한 젊은 과학자들에 의해 홍 교수는 BRICS에 ‘한국을 빛내는 사람’으로 소개됐다.

“정신질환은 크게 뇌 세포가 병들어 초래되는 정신분열증·조울증·심한 우울증 등의 정신병과 흔히 노이로제로 알려진 신경증·성격장애 등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정신병은 뇌의 생물학적 변화로 초래되기 때문에 약물치료만 잘 받아도 환자의 괴이한 생각과 감정·행동 등이 모두 드라마틱하게 좋아집니다. 10여 년 전부터 개발된 신약들은 신경계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정상적으로 사회에 돌아갈 수 있어요. 실제 요즘은 대학생 때 발병한 환자 대부분이 치료 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합니다. 물론 아직도 환자를 방치하는 가정도 적진 않지요.” 이런 말을 하는 홍 교수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정신과 문턱 넘기 주저할 필요 없어

“암도 말기에 치료하면 백약이 무효잖아요? 정신병도 방치 시간이 길어질수록 뇌세포 파괴가 심해져 완치의 길은 멀어집니다. 감기가 들면 병원에 가듯, 말과 행동이 이전과 달라졌다 싶을 땐 곧바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정신병 증상을 일일이 알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뭔가 말이나 생각·행동이 엉뚱하다, 이상하다, 비논리적이다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처럼 ‘이상하다’ 싶을 때 환자를 잘 설득해 정신과 진료를 받게 하는 일이야말로 환자의 인생을 암흑에서 광명으로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김선한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환자가 어떤 말이든 털어놓고 싶은 자상한 선생님

“이전에는 정신질환 하면 마음을 잘못 먹어 이상한 생각을 하는 병쯤으로 여겼어요. 하지만 최근 20~30년 사이에 정신병이 뇌의 생물학적 이상으로 초래된 병이라는 사실이 하나씩 확인되고 있습니다. 약물로 병든 뇌세포나 신경전달물질을 교정해 주면 이상한 생각과 행동이 치료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심리적·환경적 요소도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정신질환입니다. 따라서 정신과 의사는 뇌의 이상뿐 아니라 환자의 불안한 심리상태도 이해심을 갖고 고쳐줄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홍경수 교수는 타고난 정신과 의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정신병의 유전학적 연구 분야에서 탁월한 논문을 발표할 뿐 아니라 모성적 열정으로 환자의 심리상태를 세심하게 파악하고 보듬어 줍니다.”

이렇게 명의 추천을 하는 김선한 교수는 홍 교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다. 하지만 홍 교수가 환자·보호자들 사이에서 “무슨 말이건 털어놓고 상담하고 싶은 자상한 선생님”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병적인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분석한 뒤 치료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가 진료실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홍 교수는 환자(보호자)가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포근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짜 정신과 명의라고 할 수 있겠지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