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약 없는' 의약분업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동네 의원들의 20일 파업 예고에 동조해 의대 교수들이 일괄 사퇴를 결의하고 전공의들도 파업을 예고하는 등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간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을 보름가량 앞둔 시점에서 의.정 양측의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의약품 재분류.약사법 재개정 등을 내세운 의료계와 이에 맞선 정부가 지난 9일부터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15일까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폐업.교수직 사퇴.파업.동맹휴업 등 극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양측의 갈등이 계속될지, 아니면 극적으로 타결될지, 의약분업이 좌초할지, 궤도에 오를지 여부는 이번 주내 판가름날 전망이다.

◇ 경과.배경〓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지난해 11월 30일 장충체육관 집회, 2월 17일 여의도 집회, 4월 4~6일 집단 휴진, 폐업 선언, 의대 교수들 사퇴 결의 등으로 이어지면서 점차 투쟁 강도를 더하고 있다.

의료계는 ▶의약품 전면 재분류▶지역의료보험 재정 50% 국고지원▶약사법 재개정▶약화사고 책임소재에 관한 명문조항 마련▶약사의 임의조제 근절▶처방료.조제료 현실화 등 10가지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다.

반면 의사.교수.의대생 등 범의료계가 요구하는 조건은 약사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해야 하고 법을 개정해야 할 사항들이라 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약값 마진을 없앤 조치)를 전격 시행하면서 촉발된 의료계의 반발이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 등 범의료계 차원으로 확산된 것이다.

문제는 의사협회 지도부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계의 투쟁이 강성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의협 관계자는 "너무 진도가 나아가 통제가 불가능한 지경" 이라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의료계의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은 의협 산하 특별기구인 의권쟁취투쟁위원회로 30대와 40대 초반 개원의들이 주축이다.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누릴 만큼 누린 세대' 인 40대 후반과 50대 이상의 개원의들보다 젊은 개원의들이 분업의 폭풍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상진(申相珍)의쟁투 위원장은 "지금은 정부와 협의할 필요가 없으며 의쟁투 지도부는 감방에 갈 각오가 돼 있다" 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의.정 갈등은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 전망〓의.정 양측의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은 작다.

머리를 맞대고는 있지만 의료보험 수가나 지역의보 국고지원 등 일부 조항에 대해서만 대화를 진행하는 실정이다.

15일까지 일부 조항에 대해 합의점을 찾는다 해도 불을 끄기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의쟁투는 합의사항을 근거로 폐업을 철회할 것인지에 대해 전국 의사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돼 있지만 "얻어낸 게 고작 이 정도냐" 며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폐업과 교수직 사퇴.파업 등으로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하면서도 두차례의 집단휴진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현 시점에서 의협 지도부를 한명이라도 사법처리할 경우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꼴' 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의쟁투 申위원장은 "제발 나를 구속해 달라" 고 공언할 정도다.

민주당 관계자도 "현 시점에서 의료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카드가 더이상 없다" 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의약분업이 시작되면 불편하고 돈이 더 든다고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분업의 한 축인 의료계의 외면으로 분업은 또다시 좌초할 가능성도 있다.

신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