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찬호형 나이트클럽 데려가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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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매주 금요일 성백유 기자의 미국 골프 체험기에 이어 화요일에는 이태일 기자의 프로야구 인사이드 피치를 게재한다.

인사이드 피치는 야구계의 숨은 이야기나 흐름을 독자들에게 소개, 프로야구의 깊은 맛을 제공하려는 취지다.

중앙일보는 앞으로도 전문기자들의 코너를 넓혀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할 계획이다.

"형, 나이트 한번 데리고가줘요. "

지난달 9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애리조나 피닉스로 원정을 갔던 박찬호(27.LA 다저스)는 후배 김병현(21)으로부터 장난기섞인, 그러나 사뭇 진지한 청을 받았다. 다음에 자신이 LA에 원정오면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는 나이트클럽에 동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박은 전날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3과3분의1이닝만에 8점이나 내주고 패전투수가 됐으나 이튿날 후배 김병현과 함께 한 점심식사 자리에서는 마냥 즐거웠다고 한다.

박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1995년께 했던 고생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도 여섯살 차이라 그때의 생각이 많이 났다. 메이저리그란 정글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병현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했다" 고 한다.

그날 둘이 함께 한 자리에서 김병현이 털어놓은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 이었다. 김이 박에게 '나이트 동행' 을 부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둘다 혈기왕성한 20대. 한국에 있었다면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젊음을 만끽할 나이지만 일찍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낯선 얼굴과 문화 속에서 살아가려다 보니 고개를 야구장 밖으로 돌릴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하루종일 야구 생각만 하고 야구장에서 숙소를 오가는 반복된 생활이 김병현의 머리속은 야구로, 가슴은 외로움으로 가득 채워놓은 것이다. 그러던 차에 박찬호를 만났으니 그 갈증을 풀고 싶은 게 당연했다.

박찬호가 처음 시즌 10승을 올리던 97년 몬트리올의 지하철 안에서 박찬호는 필자에게 "앞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오래 버텨야 한다. 이 지하철 안에 머리가 검은 사람은 우리 둘뿐이다. 내가 훗날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다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라며 자신의 의지를 다졌던 바 있다.

13일부터 LA에서 만나는 박찬호와 김병현이 '나이트' 에 동행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할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박찬호가 지하철 안에서 했던 그날의 다짐은 김병현을 통해서, 또 그 다음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설 또 다른 '코리안' 을 통해 계속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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