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보건복지부는 떳떳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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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다가오는 7월 1일부터 실시될 의약분업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여러 단체들에 의해 갈등이 표출돼 왔다.

특히 일반 국민에게는 의약분업의 방법을 놓고 의사단체와 약사단체가 각자의 집단이익을 놓고 싸우는 볼썽 사나운 모습으로 인식됐다고 본다.

이렇게 된 경위에는 보건당국의 의도가 깔려 있지 않은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근간에 의료계가 의약분업실시 관련 정부안에 대해 그 부당성을 강도 높게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서자 정부는 의약분업이 오는 7월 정부안대로 실시되면 그간 산적한 수많은 문제들이 즉시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대중매체를 통한 대국민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면서 임기응변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보건복지부의 대책안들을 보면 너무나 실망스럽다.

이번 의약분업 실시에 있어서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가 지난해 마지막 국회회기 중 통과된 신약사법으로 약사들에게 임의조제권을 부여한 점이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의약품을 의사만이 처방 가능한 전문 의약품과 의사.약사가 모두 처방 가능한 일반 의약품으로 구분해 전문 의약품 약60%, 일반 의약품 40%의 비율로 분류했다.

이에 의사들은 의약품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일반 의약품을 선진국 수준인 15~20% 선으로 규제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약사들의 입장으로 볼 때 약사의 임의조제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이야 어떻든 일반 의약품 분류를 전체 의약품 중 40%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의약품을 분류함에 있어 약 성분에 의한 분류뿐 아니라 약 용량에 의한 분류도 함께 적용했는데 이로 인해 동일 약품이 50㎎짜리는 일반 의약품으로, 100㎎짜리는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지극히 논리적인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선진국에서도 용량에 의한 분류방법을 적용하기는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정부는 단순히 두 단체간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일반국민에게 비쳐지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일반 의약품의 몫이 크면 클수록 국민이 약국에서 쉽게 약품을 구입하게 돼 소비자의 입장에서 편리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국민이 구입한 약품에 대해서는 종전과 같이 약국 보험제도에 의한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의료보험공단에서 이를 상환할 책임이 없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 재정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항이다.

앞으로 의사처방 없이 약국에서 직접 구입한 일반 의약품일 경우 의료보험 급여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그만큼 국민 개개인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게 되지만 반면 의료보험공단의 재정적 부담은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 점을 국민들이 모두 다 알고 동의한 것인가. 왜 정부는 국민들에게 의료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을 떳떳하게 알리고 동의를 받지 않는가.

그외에도 정부안대로 의약분업이 그대로 실시된다면 추가되는 의사의 처방료, 약사의 조제료 등으로 인해 지금보다 약 1조원 이상의 재정부담이 추가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당국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현재 정부당국에서는 의약품 분류를 놓고 사안을 단순히 의사.약사간의 '밥그릇 싸움' 차원으로 몰아 국민에게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며 여론을 의도적으로 호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의약분업을 앞두고 이러한 약품분류가 가능한 것은 혹시나 또다른 속칭 로비의 결과는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의약분업을 목전에 두고 얽히고 설킨 상황이지만 올바른 해결책을 어떻게든 찾아야 할 책임은 행정당국에 있다.

대낮 어느 대로에서 갑자기 눈을 뜬 장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것을 보자 '그럼 다시 눈을 감고 돌아가라' 고 했다는 연암(燕巖)박지원(朴趾源)선생의 말씀처럼 행정당국은 의료소비자인 국민을 위하는 길이 진정 무엇인지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하면 보다 바람직한 해법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성락 <한국병원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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