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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자전소설 내달부터 본지 연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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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황씨는 자전소설을 본지에 연재하기로 마음먹은 데 대해 "나의 후기 문학을 시작하기 전에 뭔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 신동연 기자

▶ 민정기 화백

▶ 그림=민정기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 황석영(61)씨가 자전 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를 다음달 1일부터 본지에 연재한다. 토요일을 뺀 주 5일 게재하며, 삽화는 1970~80년대 현실비판적인 작업으로 주목받았던 서양화가 민정기(55)씨가 맡는다.

열아홉살 때인 62년 단편소설 '입석부근'으로 등단한 황씨는 단편 '삼포 가는 길'과 중편소설 '객지',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 '장길산' 등 빼어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도 황씨의 삶은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몫으로 온전히 감당한 적극적인 투신(投身)의 연속이었다.

43년 만주에서 출생, 47년 월남한 그는 경복중.고교 시절 전국적인 학생 문예지 '학원'에 잇따라 작품을 발표하며 일찌감치 문학적 가능성을 내비쳤다. 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체포돼 유치장 신세를 진 그는 74년 지금의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에 깊숙이 관여했고, 80년에는 광주에 있었다. 89년 '불법 방북' 이후 해외를 전전하다 93년 귀국, 만 5년11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이런 체험들을 황씨는 고스란히 글로 옮겼다. 85년에는 광주 민주항쟁의 기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지하 출간했고, 93년에는 북한 체험을 담은 산문집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옥중 출간했다.

황씨는 자신의 그런 인생 역정을 "평생 동안 광야로 나가려 했다가는 마을을 그리워하며 되돌아왔다가 또다시 광야로 나가기를 되풀이했던 과정"으로 표현했다.

또 "온전한 몸과 마음을 간직하면서 피투성이의 근대를 넘어서고자 했던 동북아 지식인의 현실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민지와 분단까지 겪으면서 그 유산의 짙은 음영 아래서 나의 세대는 어른이 되고 늙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때문에 연재 소설의 제목을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로 정했다"고 밝혔다. 떠나는 마음은 바람처럼 설레고 돌아오는 마음은 화살 같다더니 자신이 바로 마을 밖 들판에 서 있는 사람이고, 남루한 자신과 거처를 자세히 조망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데, 소설 연재를 그런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황씨는 지난해 4월부터 2년간 일정으로 영국 런던대에 적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소설은 영국에서 써 보내게 된다. 그는 "한국과의 지리적 거리도 내 인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좋은 조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소설은 구체적으로는 영등포에서 살며 여의도 샛강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방북 시기까지를 200자 원고지로 3000여쪽, 세 권의 책으로 묶어낼 만한 분량에 담게 된다.

황씨는 "극영화를 찍으면서 실록인 다큐멘터리 필름을 삽입하거나 대역이 나와 역사적 사실을 되풀이해 극중 장면과 사실적 장면을 서로 어울리게 배합하는 것처럼 '소설-자전'의 영역을 넘나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소설 연재를 위해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로망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사르트르의 '말' 등을 다시 들추어봤다"고 말했다.

삽화를 맡은 민정기씨는 "황 선생님의 유년 시절, 그리고 그 후 당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삶의 모습을 작은 공간에서나마 매번 밀도 있게 표현해보겠다"고 말했다.

소설의 제자(題字)는 서예가 여태명(48)씨의 작품이다. 여씨는 "판본고체(용비어천가)를 응용해 글자에 크고 작게 변화를 주었고, 필획을 힘차게 해 남성적이고 고박하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여씨는 '마을을'에서 조사 '을'의 'ㄹ 받침' 좌우가 바뀐 것에 대해 "완판본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반복되는 글자여서 응용했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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