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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 칼럼] 16대 국회 원구성은 했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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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대 국회가 어제 첫 집회를 갖고 개원했다. 16대 국회는 임기 개시 후 7일에 열리는 첫 집회에서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선출, 원(院)구성을 해야 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오랜만에 지키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도 국회가 이런 모습을 견지할지는 의문이다.

'과반미달의 야당 승리' 로 나타난 총선결과를 대화.협력.상생(相生)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던 총선 직후 정치지도자들의 다짐은 이미 빛이 바랬다.

여야 영수회담 합의와 어긋나는 여당의 인위적 다수파 공작과 야당의 피해의식 때문에 여야간 신뢰는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은 얼마전 무소속 의원 4명을 영입하고 이한동(李漢東)자민련 총재의 총리 지명을 통해 자민련과의 공조 복원에 나섰다.

국회의석이 3분의1로 줄어든 자민련을 국회교섭단체로 다시 만들어주기 위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낮추는 국회법 개정안 제출에도 함께 나섰다.

이러한 민주당의 행보는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하지 않는다' 는 여야 영수회담 합의와도 어긋난다.

선거 때 무소속 의원들이 당선되면 민주당에 입당하겠다고 공약했다지만 민주당은 그들이 당선돼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은 자민련과의 공조를 깬 적이 없다지만 내각제개헌이 물 건너갔을 때 이미 공조의 명분은 사라졌고, 선거과정에서 공조 파기는 셀 수도 없을 만큼 거듭 공언됐던 일이다.

야당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수행할 야당대표 파견요청을 거절했다. 정당.사회단체대표회의를 내세워 당국간 대화를 회피해 온 북한측 전략에 이용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론 회담에 간여하지 않아야 나중에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는 속셈인 듯하다. 이러한 야당의 태도는 '남북회담이 범국민적.초당적 지지 속에 이뤄지도록 양당은 적극 노력한다' 는 영수회담 합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국가대사를 놓고도 당리(黨利)차원에서 주판만 굴리는 협량(狹量)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전에는 여야 영수회담을 하고나면 상당 기간 여야간 대화.협력 분위기가 살아나곤 했다.

한참 뒤에는 속았느니, 배신당했느니 하는 불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적어도 몇달 또는 1년 정도는 '약효' 가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지도자들이 집권한 후로는 여야 영수회담을 하고나면 오히려 정국이 더 경화되는 일이 잦다. 신뢰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미 걱정스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자칫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고 국가발전에 부담만 됐던 지난 2년간의 정치를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민의 결정과 명령을 확인했던 총선 직후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당은 소수당들이 제휴해 선거에서 이긴 다수당을 몰아세우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는 게 좋다.

특정 정당을 위해 법을 고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의 발의와 처리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명분도 안서고 타이밍도 좋지 않다. 국회법을 고치려면 전반적인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검토해야지 이것만을 처리하려 하면 위당개법(爲黨改法)이란 비판을 면할 도리가 없다.

이런 국민적 비판을 무릅쓰고 민주당이 법 개정에 나서는 건 자민련을 끌어들여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무력화시키려는 다수파 공작임을 스스로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총리 임명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도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 절차법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해서 약식.편법으로 하려 들면 안된다.

삘리 절차법을 제정하든지, 그것이 어려우면 제정될 절차법에 담아야 할 수준의 청문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야당도 정부.여당의 정국 운영에 불만이 있더라도 남북 정상회담에는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좋다.

국가대사에는 협력을 하면서 비판도 해야지 줄곧 냉소.비협조의 인상만 줘선 '집권경험을 가진 야당' '수권 야당' 주장이 무색할 뿐이다.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국민적 여망이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여 선거민의에 승복하겠다던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바로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고 국민대통합과 여야협력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는 일이다.

성병욱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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