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 사로잡은‘레드 카펫’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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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터키 이스탄불 시내에 있는 대형 쇼핑몰 제바히르에서 10일 쇼핑객들이 LG TV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다른 TV에도 LG 브랜드 영상물이 상영 중이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중심가인 메즈디예쿄이의 ‘제바히르’ 쇼핑몰. 이 나라 최대 소매단지로 젊은이들이 쇼핑과 외식을 즐기는 곳이다. 지난 10일 1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액정화면(LCD) TV가 줄지어 있고, 그 안쪽으로 이 나라 최대 가전 유통업체 테크노사의 매장이 있었다. 수백 대의 평판TV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자리는 대부분 LG전자의 보더리스 TV가 차지하고 있었다. LG전자 터키법인의 브랜드마케팅 매니저인 에브루 규뮤스는 “쇼핑객의 동선을 분석해 어느 지점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지 면밀히 따진 다음 테크노사에 전시 장소를 요구한다”고 전했다. 특이한 점은 보더리스 TV를 포함한 모든 평판TV 화면에 LG와 테크노사의 로고가 나란히 표시되는 영상물이 계속 돌아갔다. 규뮤스는 “이달부터 처음으로 테크노사와 함께 진행 중인 듀얼 로고 프로모션”이라며 “LG 브랜드 이미지를 현지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려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터키에서 LG전자 등 한국 가전업체들이 뛰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인 평판TV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선두권을 형성했다. 9월 터키에서 팔린 8만9000여 대의 평판TV(LCD TV와 PDP TV) 가운데 LG전자 제품 점유율은 17.2%로 현지업체 베스텔(16%)을 제치고 선두가 됐다. 삼성전자는 14.5%로 3위를 기록했다. 필립스(12.5%)와 소니(6.9%)를 앞지른 것.

특히 LG전자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LG는 2007년 7.8%, 지난해 8.4%의 시장 점유율로 4~5위권이었다가 올해 들어 급속히 시장을 잠식했다. 터키법인의 최영수 차장은 “물건만 잘 만들면 잘 팔리는 시대가 지났다는 점을 명심하고 현지에 맞는 마케팅에 승부를 걸었다”고 말했다. 현지 소비자들이 어떤 성향이고 무얼 원하는지 제품에 반영하는 ‘인사이트 파인딩(Insight Finding)’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는 것이다. 가령 직원들이 평판TV를 설치하려고 가정 방문을 할 때 빨간색 카펫을 들고 들어간다. 카펫 위에서 생활하는 터키인들의 주거문화를 감안해 혹시 카펫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으려는 세심한 배려다. ‘VIP 설치’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이런 서비스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고 한다.

가전업계에선 터키를 ‘포스트 브릭스(BRICs)’로 분류한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이른바 신흥경제 4국을 뜻하는 ‘브릭스’ 이후에 떠오르는 큰 시장이라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육박하고 인구가 7000만 명에 이르는 만만찮은 잠재시장이다. 게다가 35세 이하의 젊은 인구가 전체의 70%에 달해 유행에 민감한 정보기술(IT) 기기에 대한 구매 성향이 높은 편이다.

LG전자의 김창후 터키법인장(상무)은 “중저가 가전제품은 대리점 영업을 펼치는 아르첼릭과 베코 같은 현지업체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쇼핑몰 등을 통해 고가의 프리미엄 시장에 힘을 쏟는다”고 전했다. 그는 또 “터키에서 유행하는 제품은 인근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도 뜬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부터 유럽과 미국의 대형 전자제품 매장이 줄줄이 터키에 진출하는 배경이다. 영국의 일레트로월드, 독일의 미디어마크트, 프랑스의 다티, 미국의 베스트바이 등이다. 삼성전자도 터키 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해 내년 초 현지 마케팅법인을 판매법인으로 격상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스탄불(터키)=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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