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386 눈물'의 속뜻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숭실대 사회봉사관. 1980년대 학생운동권 간부 출신들이 '386 정치세력 대안론' 을 내세우며 지난해 10월 결성한 '한국의 미래, 제3의 힘' 이 비상총회를 열고 있었다.

5.18 광주항쟁 20돌 전야에 벌어졌던 '386 술판' 사건 2주 만에 이 단체 회원이 연루된 사실을 깊이 반성하고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하겠다는 취지였다.

술자리 참석자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과 우상호 민주당 서대문갑 위원장, 그리고 임수경씨 글을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무단 삭제했던 이정우 총무가 징계 대상이었다.

오후 7시30분 회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시작됐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禹위원장이 "많은 기대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실망을 드린데 사과한다" 며 먼저 입을 열었다. 이어 宋의원도 "80년 그 뜨거운 열정이 어느 순간 기존 문화에 물들어 버렸다" 며 침통해 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禹위원장도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오후 9시쯤 징계안건 토론이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 한 회원이 "징계가 술자리 참석 때문인지 언론보도로 파문이 커진 탓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며 포문을 열었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사건이 과장됐다" "동료를 두번 죽일 순 없다" "우리가 진짜 희생양" 이라는 강경 '소신' 발언이 뒤를 이었다.

심지어 몇몇 회원은 "징계는 이번 파문의 최대 수혜자인 수구 보수세력만 이롭게 할 뿐" 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11시까지 계속된 격론 끝에 징계는 유보됐다.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참석 회원이 전체 4백여 회원을 대표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부랴부랴 결의문만 채택한 채 징계안건은 다음 총회로 넘기기로 했다.

결국 禹위원장 등 이날 참석한 386세대들이 흘린 '눈물' 은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담고 있는 '참회의 눈물' 이기보다 남의 탓만 하는 '억울한 눈물' 로 비쳤다.

총회가 끝난 뒤 한 회원은 "새로운 정치세력을 꿈꾸는 동료들이 이 정도까지 도덕적으로 무감각할 줄 미처 몰랐다" 며 "국민이 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지 두렵다" 며 총총히 회의장을 떠났다.

이철재 사회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