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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중국 인사 접촉사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 김정일(金正日)총비서는 이전에도 비공개리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1983년 6월과 87년 7월 두차례였다.

그는 83년 6월 1~12일 후야오방(胡耀邦)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당시 첫 며칠간은 베이징에 머물면서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중국 수뇌부와 만났으며 그뒤 상하이(上海).난징(南京) 등 지방도시를 돌아봤다.

중국의 현대화계획 추진상황과 성과를 직접 시찰하고 중국 지도층과의 친분유지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다.

그는 이 방문을 계기로 대외관계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해 9월 7일 건국 35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중국 당.정부 대표단을 金비서(당시)가 평양역에서 맞이했다고 공식보도했다.

그는 이어 87년 7월 8일 특별열차편으로 베이징을 방문, 덩샤오핑과 비밀회담을 가진 뒤 10일 평양으로 돌아왔다.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5월 하순 베이징을 공식방문해 중국공산당 수뇌부들과 회담을 가진지 2개월이 채 못된 시점이었다.

당시 북한은 88서울올림픽 개최 및 한.중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金총비서는 평양을 방문한 중국 고위 지도자들과 金주석이 만나는 자리에 배석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85년 5월의 김일성.후야오방 회담, 89년 4월의 김일성-자오쯔양(趙紫陽)회담, 90년 3월의 김일성-장쩌민 '(江澤民)'회담에 배석했다.

그러나 92년 8월 한.중수교가 이뤄진 뒤 북.중관계는 급격히 악화됐고 이에 따라 지도자들간의 교류도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북한은 심지어 9월 21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중국을 "제국주의에 굴복한 변절자.배신자" 라고 몰아붙이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상황에서도 양국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군사.친선참관단 등의 교류는 끊이지 않았다.

金주석 사망 당시 북한은 사절단.대표단을 외국에 파견하거나 외국인사 입국을 허용치 않았지만 중국만은 예외였다.

'96년 5월 김광진 북한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양국은 '군사원조 협력협정' 을 체결, 군수품 공급 및 군사기술 지원문제에 합의하기도 했다.

金총비서는 중국과의 정치관계 복원에 나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6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베이징에 보냈다.

이어 10월엔 탕자쉬안(唐家璇)중국 외교부장이 평양을 찾음으로써 양자관계는 회복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3월 5일 金총비서가 파격적으로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 4시간이나 머물러 자신의 방중을 예고했다.

金총비서의 이번 방중은 양국관계의 정상화뿐 아니라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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