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 '비평 익명성' 사이버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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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비평의 익명성에 대한 젊은 비평가들의 사이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이 벌어진 사이버 공간은 '문학과지성사' 의 홈페이지(www.moonji.com) 자유게시판.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논쟁에 권성우.이명권.박기수씨 등 젊은 비평가들이 뛰어들면서 열기를 더하고 있다.

논쟁은 권성우(동덕여대 교수)씨가 시작했다. 권씨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계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실린 평론가 권오룡씨의 '권력형 글쓰기에 대하여' 를 비판하는 글을 21일 자유게시판에 올렸다.

권성우씨는 이 글에서 "권오룡씨의 글이 비판대상인 평론가의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문예지에 썼던 나의 글 '비판, 그리고 성찰의 현상학' 에 대한 반론으로 보인다" 며 "나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글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실어달라" 고 요구했다.

'비판, 그리고 성찰의 현상학' 이란 글은 '문학과지성사' 를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된 글이다.

권성우씨는 이와 함께 "(비판대상을 밝히지 않은)권오룡씨의 글이 과연 열린 대화를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고 비판했다.

'문학과지성사' 측은 다음날 이런 요구를 거절하면서 권씨의 입장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권오룡씨의 글은 비평의 일반적 문제를 지적한 것일 뿐 특정인을 구체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니며,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는데 반론권을 달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는 것.

이런 '문학과지성사' 의 입장에 대해 권성우씨가 반론을 제기하면서부터 논쟁은 본격화했다.

권씨는 "반론권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권오룡씨와 같은 논의방식(비판대상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진정한 대화와 성실한 논쟁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비판의 기회를 달라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비판대상의 이름을 안 밝히는 모호한 글쓰기는 생산적 대화를 가로막는 논법" 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본 다른 비평가와 논객들이 뛰어들어 논쟁은 더욱 확산됐다. 평론가 이명원씨는 권오룡씨의 글에 대해 "우회적 글쓰기보다 성숙한 대화적 글쓰기를 시도해야한다" 고 비판했다.

또 박기수씨는 "글쓰는 사람들이 비겁한 침묵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며 본격 논쟁이 부족한 문단의 풍토를 비판했다.

그는 "권성우씨와 같은 평론가의 글은 도발적인 만큼 위험부담이 높지만 소중한 시도다. 그러나 이들의 도발적 의견에 대한 논리적 검증도 필요하다" 며 "논쟁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가길 바란다" 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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