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민족이익과 국가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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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주 앞으로 다가온 정상회담을 두고 국내여론이 묘한 굴절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북쪽 세계가 제기하는 통일에의 도전과 기회 때문에 이상론이 지배했던 초기의 여론이 이제 남쪽세계의 경제위기론이나 반미감정 표출 때문에 정상회담의 대차대조표를 따지는 현실론에 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왜 정상회담을 해야 하며, 또 어떻게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아직 남한 내에서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정상회담에 대한 홍보만 있었지 전략적 과제에 대한 합의도출의 노력은 미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보다 큰 민족이익의 게임을 위해 국가이익을 어떻게 타협시킬 것인가를 심각히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

아마도 평화공존과 통일이라고 하는 민족적 차원의 이익 앞에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을 것인가 하는 국가적 차원의 이익문제는 차선적 고려사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외 정치상황은 이것을 그대로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민족이익과 국가이익의 대차대조표에 대한 마지막 점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점검돼야 할 사항은 정상회담의 원칙과 전략문제일 것이다. 정상회담의 궁극적인 목표는 말할 필요도 없이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통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에게 민족이익을 위한 파트너인가 아니면 국가이익을 위한 전략적 경쟁 상대인지가 분명치 않다. 뿐만 아니라 이 양자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민족이익과 국가이익의 타협 기준을 분명히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두번째의 점검사항은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북한특수' 를 공언한 형편이며, 이러한 공언의 배경에는 북한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협력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 당국이 내놓은 북한특수 자금대책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작금의 경제위기론은 우리가 과연 북한에 경제협력을 할 여유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골드먼 삭스사가 내놓은 통일비용 추계에 따르면 현재 남한의 15% 정도에 머물고 있는 북한의 노동생산성을 향후 10년간 50%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연간 8백3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남한 국내총생산(GDP)의 17%에 해당하는 것으로 독일의 10% 미만에 비하면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셋째,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 살상무기 대책이 점검돼야 한다. 이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우방인 미국과 일본의 직접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쉬운 문제 중심의 실용주의 접근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핵무기와 미사일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미국 사이에 마찰이 감지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은 미.일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한 대량 살상무기 대책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러한 우방과의 공조문제가 남북간의 자주문제와 충돌을 빚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넷째, 북한의 통일전선 정책을 둘러싼 남한의 부정적 여론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정당대표 참석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보여주듯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해방 이후 계속 돼 온 북한의 통일전선 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오히려 역(逆)통일전선 정책을 쓸 때가 됐다. 각계 각층의 광범위한 대북접촉이 북한의 남한 이해 내지 교류에 촉매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가장 큰 장벽인 양측 국가의 경성(硬性)체제를 연성화(軟性化)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합의의 새로운 영역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두 정상은 양측의 여론에 앞서가는 서로의 전략을 통해 평화공존과 통일에 대한 국민 여론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정치사회화' 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정상회담의 전략적 과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출에 우선적 노력을 경주해

야 할 것이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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