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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Battle 승자의 대결 결승] 주제:맛있는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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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사진左)장윤석 셰프의 ‘로스트 비프’는 간단했지만, 음식을 두고 셰프와 먹는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즐거운 요리로 꼽혔다. 사진 右)산마ㆍ더덕포ㆍ흑임자 전병을 피로 만든 이상학 셰프의 ‘세 가지 종류의 쌈밥’은 만드는 방법이 복잡했지만 그 모양새만큼은 화려했다.

‘맛있는 음식’.

셰프 배틀 결승전 주제다. 셰프들에겐 준결승전 결과 발표 직전에 공표됐지만, 실은 셰프 배틀 기획 당시부터 마지막 경기의 주제는 이걸로 정해져 있었다.

셰프 배틀의 슬로건은 ‘음식에 혼이 아닌 맛을 담아라’였다. 이는 비장하고도 엄숙한 음식이 아니라 맛있고 즐거운 음식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배틀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공감한 17팀의 셰프들은 ‘질 수도 있다’는 부담감 속에서 배틀에 나섰다. 배틀 참여자들은 모두 업계에선 천재 소리를 듣는 셰프들이거나 특1급 호텔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으며 호텔의 명예를 짊어지고 나온 젊은 셰프들이었다.

따라서 배틀 결과에 대한 부담감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것이었다. 실제로 일부 특1급 호텔 측은 “질 수 있는 경기엔 나갈 수 없다”며 배틀 참여를 거부했다. 배틀 사흘 전에 지레 기권한 팀도 있었다.

그럼에도 참가 셰프들은 배틀을 즐겼다. 매달 한 번씩 열렸던 배틀장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고, 구경하는 사람들이나 심사위원들이 배틀 중인 셰프들과 웃고 떠들며 어울리는 와중에 음식은 만들어졌다.

셰프들은 상대팀이 조금 늦게 나타나도 기다려줬고, 요리 재료를 놔두고 온 상대팀에 재료를 빌려주기도 했다. 배틀은 치열했으나 경쟁의 초조함은 없었다. 그 치열함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창조의 에너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로써 셰프 배틀은 기존엔 없던 요리들을 세상에 내놓았고, 음식에 생각과 스토리와 마음을 담는 법을 창조하는 장이 됐다.

이제 그 마지막 경기가 끝났고, 최종 승자가 가려졌다. 하지만 그건 그저 게임의 결과일 뿐, 진정한 승자는 이 배틀을 즐긴 모든 젊은 셰프들이다.

글=양선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장윤석(32ㆍ플로라)·송용욱(36ㆍ르 코르동블루) 셰프팀과 이상학(37ㆍCJ푸드빌) 셰프 팀이 맞붙은 ‘셰프 배틀 파이널 라운드’에선 장 셰프팀이 최종 승자가 됐다. ‘맛있는 음식’을 주제로 벌어진 이번 배틀에서 승리한 음식은 ‘로스트 비프’였다.

음식은 평범하고 간단했다. 쇠고기 등심을 통째로 구워 직접 썰어주는 로스트 비프에 감자와 샐러드를 곁들이는 한 접시로 구성했다. 고기는 미디엄과 미디엄 웰던, 두 가지로 구워 취향에 따라 골라먹도록 했다. 여기에 디종 머스터드와 홀겨자를 섞어 곁들였고 굵은 소금과 프랑스산 고춧가루를 고기에 살짝 뿌려주는 걸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들의 메뉴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셰프들은 요리를 하면서 조리대에 데운 빵과 버터와 염소크림치즈를 내놓고 테이블 와인과 올리브도 차려놓았다. 심사위원과 스태프들이 오가며 집어먹도록 하고, 음식을 권하며 말을 걸었다. 편안한 사교모임이나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며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즐기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음식도 셰프가 직접 눈을 맞추고 얘기를 나누며 썰어주었다. 음식 그 자체뿐 아니라 분위기가 맛을 배가시킨다는 점에 착안한 전략이었다. 이 팀의 저력이었던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결정판이었다.

실제로 최종 라운드의 규칙은 애피타이저-메인-디저트 코스로 구성했던 기존 배틀과 달리 단품 요리든, 서로 잘 어울리는 음식이든 ‘맛있는 음식’을 내놓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장 셰프팀은 분위기와 셰프의 태도라는 요소까지 포착해, 요리 대결을 솜씨와 음식 맛으로만 승부처를 삼는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줬다.

이에 맞선 이상학(39) 셰프팀은 쌈밥과 한식 맑은 국물을 내놓았다. 더덕·마를 곱게 펴서 굽고 흑임자죽으로 전병을 구워 이를 쌈으로 삼아 밥과 게장·고기 등을 넣어 한 입 크기로 만든 것이었다. 장 셰프팀이 평범하고 편안한 음식을 낸 반면, 이 셰프팀은 독창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냈다.

이날 심사위원은 모두 17명. 맛블로거, 푸드 스타일리스트, 잡지사 맛 기자, 출판사 음식 관련 책 편집자 등이었다. 이들은 양팀의 음식을 맛보고, 투표용지에 심사평을 쓴 뒤 한 팀을 선정하는 방식의 투표로 승자를 결정했다. 결과는 9대 8로 장 셰프팀의 한 표 차 승리였다. “장 셰프팀의 음식은 평범하고, 편하고, 맛있고, 즐거웠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평범함과 편안함 때문에 어떤 이는 장 셰프팀을 승자로 꼽았고, 또 다른 이는 승자로 꼽기를 주저했다. 이 셰프의 음식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이었다. “일본 음식을 세계에 알린 게 스시였다면 한식의 세계화 기수는 쌈밥이 돼야 한다”는 그의 지론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 것, 밥이 차지면 맛이 떨어지는 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과제로 남겼다. 그래도 그의 실험정신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를 높이 산 심사위원들은 표를 주었고, 아직은 미진한 점이 마음에 걸린 심사위원들은 표를 거둬들였다.

배틀의 본 경기가 끝난 뒤 참가 셰프들은 유난히 많이 온 심사위원과 스태프들에게 배틀 음식 외에도 번외로 음식을 만들어 내며 분위기를 돋웠다. 장 셰프는 큰 볼에 가정식 티라미수케이크를 만들어 와 내놓았고, 이 셰프는 횡성한우를 숯불에 구워 명이나물과 장아찌들을 곁들여 내놓았다. 흥겨운 뒤풀이가 끝났다. ‘셰프 배틀’의 10개월간의 대장정도 막을 내렸다.



WIN 장윤석 셰프
평범함, 그러나 마음 움직였다

“매일 서로 전화를 걸어 지금 셰프 배틀 심사위원과 스태프를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했어요. 그리고 늘 그분들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죠.”

셰프 배틀 최종 승자가 된 장윤석(32ㆍ플로라ㆍ사진)ㆍ송용욱(36ㆍ코르동블루) 셰프의 결승전 준비는 이렇게 이색적이었다. 그들은 결승에서 이기는 걸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 자리까지 서게 도와준 많은 사람과 자신들의 음식을 인정해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뒤풀이’를 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게다가 결승 주제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하지 않는가. 장 셰프는 “맛있는 음식이란 결국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업계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셰프들과 경쟁에서 음식 맛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그냥 배틀에 오신 손님들이 편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최종 승자로 결정되는 순간 장 셰프는 “어리둥절하고, 얼떨떨하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중앙일보에서 누가 우릴 봐 주시나 봐요”라고도 했다. 실제로 장 셰프는 첫 게임부터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그도 그랬던 것이 장 셰프팀의 상대는 ‘에지 있는’ 요리 솜씨로 유명한 양지훈 셰프, 천재급 셰프로 통하는 최현석 셰프, 부산의 자존심 김정현 셰프 등 명성만으로도 주눅 들게 하는 강팀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상대는 첫 경기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여겨졌던 이상학 셰프였다. 이렇게 누가 봐도 어려운 강팀을 차례로 꺾고 올라오면서 그들에겐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장 셰프팀의 메뉴는 항상 별로 튀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범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늘 이겼다. 심사위원들은 장 셰프팀을 네 차례나 승자로 결정하면서 한결같은 말을 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했다.”

장 셰프는 우승 상금 100만원을 송 셰프가 참가하는 세계 최고 요리대회인 ‘보퀴즈 도르’ 아시아 예선전 준비금으로 쾌척했다. 장 셰프는 나이 제한 때문에 아직 참가하지 못한단다. 장 셰프는 배틀 참가 이후 스스로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다른 셰프들을 보면서 많이 감동했고, 고교 때 그렇게 싫어했던 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공부가 좋아지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는 “바쁜 휴일마다 배틀 참가 때문에 자리를 비워도 오히려 격려해 준 플로라 동료들, 언제나 내 편인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번번히 강팀 만나 아슬아슬했는데…

장윤석-송용욱 셰프조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었다. ‘고구마’가 주제였던 예선에서 코스마다 고구마를 수프로, 파스타 속으로, 군고구마로, 퓌레로 변신시키며 다양한 변주를 이끌어냈고, 이로써 천재 셰프로 꼽히는 양지훈(루카511) 셰프를 가볍게 이겼다. 특히 디저트였던 ‘한산소곡주와 어우러진 고구마 크레뫼’는 예선 결산 당시 가장 맛있는 음식 5선에도 꼽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심사위원단은 “선생님의 숙제를 잘 풀어낸 모범생 같은 요리로 운이 좋았다”는 정도로 평했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건 ‘승자의 대결 1라운드’부터다. 역시 천재 셰프로 통하는 최현석 셰프와 ‘금혼식’을 주제로 맞붙은 이 배틀에서 장 셰프팀은 대구전과 오리떡갈비 같은 평범한 음식으로 압승을 거뒀다. 그 결과에 심사위원이 모두 놀랐을 정도였다. 이때부터 “장 셰프의 요리엔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감동이 있는 요리다”라는 평이 나오며,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힘내라 김연아’를 주제로 했던 준결승전에서 장 셰프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의 김정현 셰프를 이겼다. 애피타이저인 ‘비트 카푸치노를 곁들인 아보카도 게살 샐러드’에서 ‘초심을 잃지 마라’는 메시지를, 메인의 ‘양갈비와 과일 케이크’에서 ‘국민이 지지한다’ 등의 메시지를 요리로 풀어냈다.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를 오감만족에다 마음을 건드리는 데까지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했다.



이상학 셰프
새로움, 그러나 손 많이 갔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한 게 패인인 것 같습니다.”

승패를 가른 건 단 한 표였다. 이상학(37ㆍCJ 푸드빌ㆍ사진) 셰프는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패인을 분석하는 그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결승전을 준비한 3주는 내 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보낸 시간이었어요.” 그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주제를 받은 뒤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어떤 음식이 맛있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부모님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그래서 ‘향수’를 컨셉트로 잡았다. 수많은 요리가 그의 스튜디오 칠판에 쓰여지고 지워졌다. 남은 음식은 하나. ‘쌈밥’이었다.

“만화영화 ‘라따뚜이’처럼 촌스러운 음식이지만 한 입 넣는 순간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쌈밥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밥과 고기를 채소에 싸먹는 기존의 쌈밥과 다른, ‘새로운 쌈밥’을 만들고 싶었다. 쌈밥의 ‘씹는 맛’에 주목했다. 흑임자 전병을 만들고 마와 더덕을 곱게 펴 쌈으로 만들었다. 쌈별로 속 재료와 양념을 각각 달리 했다. 사각사각한 마 쌈 속에는 쫄깃한 전복을 넣고, 질긴 듯 아삭한 더덕 쌈에는 견과류를 넣었다. 새로운 재료로 쌈밥을 만들 때마다 사람들을 불러 먹여보았다. 음식 씹는 소리가 맛있게 들릴 때까지 수많은 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점점 욕심이 커졌다. 초밥보다 맛있는 쌈밥을 만들자. 그래서 쌈밥을 세계 사람들이 앞다퉈 사먹고 싶어하는 한국의 음식으로 만들어 보자. 밥을 얼마나 넣고, 속 재료를 어떻게 하면 맛이 좋은지 연구하다가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이제까지 해온 요리가 아닌 세상에서 하나뿐인 새로운 요리, 초밥·딤섬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한국 요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프렌치요리 셰프인 그는 배틀 결승전에 한식 국물과 쌈밥을 들고 나왔다. ‘남의 요리가 아니라 내 요리로 세계와 맞서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는 배틀을 하며 가장 큰 수확으로 ‘많은 사람을 얻게 된 것’을 꼽았다. 셰프배틀을 통해 그의 요리를 접한 횡성축산업협동조합장은 배틀 때마다 최고급 한우를 보내줬다. 그의 요리 강의를 듣는 한 회원은 쌈밥으로 결승에 나간다는 말을 듣고 시골에서 아버지가 농사지은 최상급 쌀이라며 가져다 주기도 했다. 결승전에서 쌈밥을 담아낸 그릇도 용기 회사가 선뜻 만들어 주기도 했다.

“우승은 못했지만, 셰프배틀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됐고,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등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됐습니다.”

한은화 기자

변화무쌍한 기교로 우승 0순위였는데…

이상학 셰프는 잘생긴 외모 덕분에 ‘꽃보다 셰프’라는 별칭이 붙었다. 첫 등장부터 그는 강했다. ‘바나나’가 주제였던 셰프 배틀 예선에선 동서양을 넘나드는 창의적인 요리로 정병운(JW 메리어트 호텔) 셰프를 이겼다. 일식 뎀뿌라로 풀어낸 에피타이저, 이탈리아식 바나나 파스타, 바나나 두부 푸딩 등 재료에 대한 폭넓은 해석력을 보였다. 특히 메인인 바나나 파스타는 접시 위에 바나나 한 조각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바나나의 맛과 향이 넘쳐나는 신선함을 안겼다.

‘프러포즈’를 주제로 한 ‘승자의 대결 1라운드’는 화려했고, 쇼맨십까지 보여줬다. ‘프러포즈 영상편지’가 반복되는 PMP를 접시에 담아낸 애피타이저를 필두로 메인에서는 횡성한우 안심에 곁들일 소곡주 소스에 불을 붙여 불쇼를 벌이는 등 전체 코스를 한 편의 영화나 쇼처럼 풀어냈다. 이날 대결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팀 중 하나였던 장성열(그랜드 하얏트 서울) 셰프를 누르며 ‘우승 후보 0순위’의 자리를 굳혔다.

준결승전인 ‘승자의 대결 2라운드’에선 그 특유의 화려함을 절제하고 ‘재료의 본 맛’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G20 정상회담 만찬’이라는 주제에 딱 맞아떨어지는 현실적인 요리였다. ‘해산물 샐러드와 동치미 젤리’ ‘한지에 싸서 절인 횡성한우’ 등 양식을 기본으로 하되, 끝 맛에 한식의 여운을 살린 요리들이었다. 그의 예상을 깬 얌전한 요리에 심사단은 “배틀 주제에 맞게 변화무쌍한 요리를 낼 줄 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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