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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디어렙, 경쟁원리 못지않게 공익성도 감안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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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미디어렙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방송광고 독점체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제시한 미디어렙법 마련 시한(2009년 12월 31일)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 등 4명의 의원이 잇따라 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방송통신위원회도 엊그제 정부 의견을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미디어렙법은 헌재 결정 취지에 부합하면서도 미디어 산업의 핵심인 공익성이 침해받지 않도록 제정돼야 한다. 방송광고시장에 시장경제 원칙을 도입하라는 것이 헌재의 결정임을 감안하면 미디어렙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옳다. ‘공영은 1개, 민영은 1개 이상을 허용하되 민영 렙 수는 시장 상황에 따라 정하겠다’는 방통위 의견도 이런 시장원리를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공영, 다(多)민영’ 체제는 새 제도가 추구해야 할 또 하나의 가치인 공익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할 위험을 안고 있다. 지금도 심각한 지상파들의 광고시장 독과점을 더욱 부추겨 지방 및 종교방송 등 여타 방송사들은 물론이고 신문·잡지 등 이종(異種) 매체들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KOBACO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지상파 3사의 방송광고시장 점유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시장 지배적 위치(75%)를 한참 뛰어넘는 87%에 달한다. KOBACO는 “이런 상황에서 1공영, 다민영 체제가 도입될 경우 4년 이내에 지상파들의 광고시장 점유율은 더욱 늘고, 기타 매체들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 것”으로 분석했다. 미디어렙 도입이 언론 다양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인터넷 뉴스 소비 확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급격히 사양화되고 있는 활자매체들은 고사할 위험마저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미디어렙 도입은 장기적으론 완전경쟁 체제를 지향하되, 지상파 독과점이 해소될 때까지는 제한 경쟁이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최근 법안을 발의한 4명의 여야 의원 중 무려 3명이 ‘1공영, 1민영’ 체제를 제안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미디어 시장의 현실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특정 방송매체들의 눈치를 살피며 만들어 놓은 법안의 공개마저 늦추는 일부 정당의 모습은 개탄스럽다.

미디어렙법의 또 다른 핵심 사안인 민영 미디어렙 소유지분은 특정인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제한해야 할 것이다. 광고 배분과 가격을 결정하는 미디어렙을 특정인이 좌지우지할 경우 광고는 물론 보도 및 편성의 독립성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제도가 지상파를 포함한 모든 매체의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미디어렙을 통한 광고수입을 일정 기간 강제 배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시장 지배적 점유율을 넘는 지상파 3사의 광고수입 중 일정 부분을 지역 및 종교방송, 신문·잡지 등 취약 매체들에 할당하는 방법도 검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