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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부자인 그들의 '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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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성라자로 마을의 설립자 조지 캐롤 안 신부 동상 앞에 선 김화태 원장신부. 7년 전 이곳 근무 발령을 받고 크게 망설이다가 이 마을의 설립일(1950년 6월 2일)이 자신의 생일임을 확인하고 성직자로서의 순명(順命)을 결심했다. 강정현 기자

"7년 전 부임 직후 한 할머니가 묵주기도 올리는 광경에 충격 받았지요. 한센병으로 양 손을 잃고 발가락은 두 개만 남은 분인데, 발가락으로 어렵게 묵주를 집어올려 손목에 걸쳐요. 그러곤 종일 입술로 묵주를 굴리세요. 하도 굴려서 굳은살 박힌 입술로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기도를 올리는 것뿐'이라는 게 그 분 말씀이죠."

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 마을의 김화태(55) 원장 신부. 부임 7년째인 김 신부는 그 광경을 목격하며 뜻밖의 깨침을 얻었다. 천주교의 '사단장'으로 불리는 본당신부 생활(경기도 평택)을 포함해 열 손가락과 두 다리 멀쩡한 것을 고마워해본 적 없었던 자신부터 변화했다. 성라자로 마을의 오늘을 있게 했던 이경재(1926~98) 원장신부에 이어 살림을 맡고 있는 그의 말은 계속된다.

"여기 식구 80명 모두가 정말 장하세요. 고시 합격이나 사회적 성공만이 대단한 것일까요? 모진 병 극복하고 신앙생활하는 그 분들께 저는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행복요? 무언가에 감사드릴 것이 있다는 것부터 행복이죠.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 성라자로 마을도 받았던 은혜를 조금씩 돌려드린다는 점이죠."

성라자로 마을의 80명 식구들에게 29일과 6월5일은 특별한 날이다. 받았던 은혜를 돌려주는 이벤트 두 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두 행사 모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한다. 우선 29일 성체성사의 해 행사. 성체란 가톨릭에서 말하는 예수의 몸. 미사를 올린 뒤 음식바자 수익금에 식구들이 술 담배 줄여 모은 용돈까지 합쳐 의왕시에 전달한다.

"성체라는 것이 나눔 정신의 한 극치죠. 그렇다면 우리 식구들은 자기들 처지보다 못한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 겁니다. 마침 올해는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께서 선포한 성체성사의 해입니다."

이들의 나눔 정신은 6월5일 '그대 있음에' 음악회(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도 발휘된다.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테너 김남두, 소프라노 박미혜씨 등과 가수 최성수씨가 서는 무대다. 올해로 23회를 맞은 이 음악회의 예상수익금 1억여원은 국외로 송금된다. 베트남 호치민시의 한센병 정착촌 탄빈 마을을 포함한 중국 등지로 나가는 것이다. 김신부의 말은 성라자로 마을이 나눔의 전진기지로 어떻게 변신하고 있나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14년간 이 음악회 수익금 중 9억원이 해외로 보내졌습니다. 본래 성라자로 마을 36개 건물 중 60%가 미국.일본 등 외국과 국내 독지가들의 도움을 세워졌거든요. 이제 받은 은혜를 조금씩 갚아드리려 합니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wowow@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성라자로 마을과 한센병=성라자로 마을을 찾는 이들은 누구나 놀란다. 10만평 공간이 더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병마와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는 장애인 시설이다. 마을식구 80명의 평균연령이 75세로 중장년층 이하는 없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가 규정한 '한센병 퇴치 성공 국가'. 연 20명 내외가 발병하지만 완치가 가능하다.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치료센터라면, 라자로 마을은 대표적인 종교 요양시설이다.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6월 미국인 조지 캐롤 안 신부가 설립했으며, 55년이 지난 지금 '나눔의 기지'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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