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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창작촌 탐방] 5. 전남 담양 폐교 작업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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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광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국도, 시골길을 20여분 달리다 논밭 사잇길로 접어들면 울창한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폐교가 나온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광덕리에 있는 창평초등학교 광덕분교는 6년전 문을 닫고 지금은 작가들의 보금자리로 변했다. 창평은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을 쓴 가사문학의 고향이기도 하다.

20평 크기의 교실 한 칸씩을 작업실로 삼은 박광구(40.조각.고교 미술교사)고근호(34.조각.대학 강사)박병철(31.목공예)안유자(38.서양화.초등학교 미술교사)씨가 그들. 조선대 미대 출신 선후배들이다.

이들은 "다른 어떤 작업실도 이보다 평화롭고 아늑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입을 모은다.

1천평 넓이의 폐교는 4~10m 높이의 나무들에 완전히 싸여있다. 교사 옆에도 창문을 반쯤 가리며 나무들이 서있다. 매화.단풍.벚나무.플라타너스.라일락 등이다.

화단에는 주홍색 철쭉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키 큰 벚나무 아래엔 목공예가 박병철씨가 설치한 그네가 한가롭게 매달려 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이들이 지난 주에 심은 수박 모종 8포기가 있다. 고추.토마토.상추도 키운다.

교내엔 복숭아.단감나무.모과 등 유실수가 많아 가을엔 풍년을 이룬다. 지난 해엔 교내에서 매실 40㎏을 수확했다.

이 폐교를 작업실로 사용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 아니다. 1세대는 신양호.조근호.김동하씨 등 서양화가 3명이었다. 1995년 가을에 둥지를 틀었던 1세대는 차례로 이곳을 떠났다.

지금 식구들은 2세대인 셈이다. 지난 해 5~7월에 3명이 들어왔고 안유자씨가 홍일점으로 지난 달에 합류했다.

"처음엔 운동장에 폐자재가 그대로 쌓여있어 마음이 심란했어요. 석달 걸려서 학교를 단장하고 나니까 정이 듬뿍 들게 됐지요" 라고 고근호씨는 말한다.

고씨는 "탁트인 공간에서 마음놓고 작업하니 살 것 같다" 고 한다. 아파트 지하공간이던 옛 작업실에서는 망치질 한 번도 조심스러웠으나 이제는 자유다.

박병철씨의 이전 작업실은 카센터가 근처에 있는 탓에 소음과 싸우느라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웠다.

독신인 박씨는 학교에서 염소를 키우던 축사를 살림집으로 개조해 거주한다. 의자.책상.침대.찬장 등 모두 그가 손수 만든 것이다.

박광구씨는 재직 중인 학교 부속건물을 작업실로 써왔지만 학교가 필요하다고 해 내놓고 이 곳으로 옮겨왔다.

그는 "겨울엔 조금 춥지만 팬히터를 틀면 견딜만 하다.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어 정말 좋은 곳이다" 고 말한다.

인근 대덕면 매산리의 동료 미술인들도 이곳에 가끔씩 놀러온다.

송필용(서양화)정이석(도예)마영진(조각).김홍곤(조각.수북면 대방리)씨 등이 가까운 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해 활동 중이다.

"담양군에는 광주를 근거지로 하는 50여명의 미술인들이 작업실을 마련하거나 아예 옮겨살고 있다" 고 정이석 담양군 예술인협회 부회장은 말했다.<끝>

담양〓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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