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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무임 승차’ 안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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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34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어느새 중반으로 치닫고 있다. 2007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은 발리 로드맵을 채택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회의를 열어 2012년 이후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량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짓기로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발리 로드맵 합의대로 코펜하겐 의정서를 채택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세계 모든 국가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기체 총량이 일정한 시간표에 맞춰 일정 수준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기후과학자들은 대기 중 온실기체 농도를 400~450ppm으로 안정화시켜 온도 상승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가 넘지 않도록 해야 파국적 결과를 막을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기체 배출량을 1990년 수준의 50%로 감축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인류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총 탄소 예산이다. 탄소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누가 얼마나 배출할 수 있는지, 그래서 누가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협상은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환경 문제의 해결에는 ‘오염자 부담 원칙’이 기본이지만 ‘무임승차자(free-rider)’ 문제가 항상 암초처럼 작용한다.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기 중 누적된 온실기체가 기후변화의 중요한 원인이라면 역사적으로 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일수록 책임이 더 크다. 그에 합당한 감축행동에 나서야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1992년 기후변화협약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차별적인 책임 원칙’을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기본 원칙으로 채택했고 역사적 배출 책임에 근거해 선진국이 우선적으로 감축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을 목표로 잡으면서 무임승차자가 되려 하고 있다.

특히 이제껏 선진국들이 제시한 감축목표를 보면 독일과 영국 등 몇 나라를 제외하곤 ‘선진국의 경우 2050년까지 1990년 수준의 80%를, 2020년까지 30%를 감축해야 한다’는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권고안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온실기체를 배출해온 미국은 2005년 배출량의 20% 감소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 배출감축 설정의 기준년인 1990년 수준으로 환산하면 4% 남짓 감축에 불과하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개도국의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게 문제라면, 그래서 개도국의 참여가 정말 필요하다면, 역사적 배출책임이 큰 선진국이 보다 적극적인 감축목표를 채택해야 한다. 그래야 개도국들의 의미 있는 참여를 견인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제로섬 게임에서 지켜야 할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다.

기후변화는 세계 곳곳에서, 더욱 심각하게는 대응력과 복원력이 취약한, 나아가 기후변화 유발에 상대적으로 책임이 덜한 가난한 국가들에서 상당한 자연재난을 야기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개도국들의 기후변화 적응에 필요한 자금을 100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은 2012년까지 100억 달러 원조만을 약속한 상태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앞으로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2050년에는 10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금조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이번 기후협상의 또 다른 쟁점이다.

궁극적으로 기후변화는 모든 인류의, 나아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한정된 탄소 예산 안에서 살아야 한다면 보다 빠르게 이 길에 적응하고 보다 적극적인 감축 행동을 하는 것만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슬기로운 선택이다. 감축행동을 미루기에는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이 별로 없다. 절박하다. 개별 국가의 이해를 넘어 세계적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하며 선진국의 보다 적극적인 감축 목표 설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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