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데스크의 눈] 문화의 거리를 꿈꾸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는 거리의 풍경을 사랑한다. 크고 작은, 번쩍이거나 혹은 낡은 건물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일러주는 가로수들… . 복잡하고 떠들썩한 거리는 그런대로,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는 그런대로 제 얼굴을 지니고 있어 좋다.

활기 찬 봄날엔 도시의 번잡함이 넘치는 명동의 뒷골목이, 마음이 스산할 땐 덕수궁 돌담길이 그리워진다.

거리에서 위안을 얻는 이가 나뿐은 아닌 듯하다. 어떤 이는 "생활이 피곤하고 지칠 땐 남대문 시장엘 간다" 고 말했다.

2천원짜리 티셔츠를 팔기 위해 "골라, 골라" 를 외치거나 1백원을 깎느라 상인과 승강이하는 모습들을 보며 "그래,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다시 기운을 낸다는 것이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문화의 향취에 젖고픈 이들에게도 그런 거리가 필요하다. 쇼 윈도에 걸린 몇 점의 예술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해질 수 있다. 저명한 미술관이라도 하나쯤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간판, 4천5백만 인구의 약 4분의1이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서울에서 이런 문화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문화인이 된다" 던 인사동 거리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경복궁 담장을 마주하고 대형 화랑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들어 간 사간동의 향취를 간단없이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바람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다행히 사간동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던 국군기무사령부가 서울 외곽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아직 국군서울지구병원의 이전은 확실하지 않지만 이것 역시 아주 가망이 없진 않다.

병원을 제 자리에 남겨두려는 국방부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시설유지 당위성은 긍정하면서도 주치의가 30분 거리에 있고 청와대에도 의료진이 있으니 대통령만을 위한 특수시설이라면 국민의 여망에 따라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는 뜻을 밝힌 까닭이다.

사실, 이런 시설들은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가 남긴 잔재들이다. 기무사 건물은 1913년 일제에 의해 경성의대 부속건물로 탄생했다.

광복 후 육군수도병원이던 이곳에 29년 전 홍릉에 있던 기무사령부(당시 보안사)를 끌어들인 것은 군사정권이었다.

지금은 무궁화동산이 된 10.26의 현장 '궁정동 안가' 도 이후락 전 정보부장이 남산 정보부에서 청와대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대통령의 지척에 마련한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정보 감시가 주된 통치수단이었던 군사정권 시절에야 통수권자와 가까이 있어야 서로 안심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민주화된 나라에서 인터넷으로 세계를 넘나드는 오늘날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기무사 터의 활용에 대한 의논도 분분하다. 과천에 '유배' 당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분관을 만들자고도 하고, 본디 주인인 종친부(조선시대 왕실의 종친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곳)가 화동 정독도서관에서 더부살이를 그만두고 돌아와야 한다고도 한다.

경복궁 주변에 흔치 않게 남아 있는 이 국유지에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계적인 미술가 백남준씨를 기념하는 국립미술관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더구나 백남준씨는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서울 서린동에서 태어났다.

'살아있는 예술가' 에게 국립미술관을 헌정하는 것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1919년 프랑스 정부가 세운 파리의 로댕미술관을 보라. 니스엔 국립 샤갈 성서이야기 미술관도 있다.

외국에서 활동한 것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조국 스페인을 떠나 활동했던 피카소에게 바르셀로나의 후원자들이 바친 미술관이 있다.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는 세계에 떨친 한국인의 빛으로만 지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백남준 미술관은 사간동을 한국인, 나아가 세계인이 찾는 문화의 거리로 키워낼 것이다.

홍은희 문화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