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그동안 '반동' 으로 비판해왔던 정지용.백석등 민족적 정서를 노래한 시인.작가들을 재평가하고 있다.
북한문학을 연구해온 홍용희.김재용씨 등은 '실천문학' 여름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분석한 뒤 "북한의 유연한 자세변화로 남북한이 함께 평가할 수 있는 문학적 공간이 넓어졌다. 이는 남북문학교류의 전망을 밝게해준다" 라며 환영했다.
정지용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로 시작하는 '향수' 로 널리 알려진 시인. 그는 해방 직후 월북했으나 일제하에서 사회주의 문학운동의 반대편에 서 모더니즘 계열 시를 주로 썼기에 '반동' 으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에서 정지용에 대해 "내용이나 형식에서 민족적이며 향토적인 색채가 짙은 시 창작의 길을 걸었다" 며 긍정평가했다.
특히 민족적.향토적 정서가 짙게 깔린 '산에서 온 새' 에 대해서는 "정지용은 그 대상이 고향이든, 자연과 풍속이든 식민지시대 민족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을 제 나름의 설움과 울분으로 터트려 민족?의분을 나타냈으며, 민족시가의 전통을 살려나갔다" 며 높이 평가했다.
물론 북한에서 재평가하는 정지용의 작품은 주로 이런 민족적 정서가 살아있는 것들이며, 예술지상적인 시들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하지 않고 있다.
홍용희씨는 북한의 재평가 논리를 '식민지현실에 대한 한탄' → '현실재인식' → '국권회복에 대한 갈망' → '민족자주성' 으로 정리했다.
즉 정지용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상실감이 결국은 국권회복과 민족자주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백석은 북한에서 태어나 만주를 유랑하다가 고향 함경북도 정주에 정착했던 시인으로 순수문학이나 참여문학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았던 인물. 그 역시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를 함경도 사투리로 잘 표현해냈다.
"화륜선 만져보려 선창 갔다//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앞에/문둥이 품바타령 듯다가//열닐헤달이 올라서/나루배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통영-남행시초2' 중)
경남 통영을 여행하다 쓴 이 시는 감정을 생략한채 서민적 풍경을 따스하게 그려내는 그의 시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북한 '조선문학사' 는 이 시를 "생활의 일상사를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것 같지만 거기에는 간고한 시기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인생이 있고, 가난속에서도 한때의 즐거움이나마 느껴보는 인정세계가 있다" 며 "민족적인 모든 것이 짓밟히던 시기 시문학의 진보성.민족성을 지켜내는데서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 평가했다.
김재용씨는 "소설의 경우 최근 염상섭을 재평가하고 있다" 고 밝혔다. 염상섭 역시 체제순응적 인테리작가, 즉 '반동' 으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최근 '현대조선문학선집' 은 염상섭의 '만세전' 을 실으면서 "사회현실을 형상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긍정적인 의의가 있다" 고 평가했다.
김씨는 "북한문학계가 근대문학유산을 넓게 포용한다는 인식에서 주로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에 대한 재평가를 벌이고 있다" 며 "냉전적 인식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주목된다" 고 주장했다.
오병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