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두다 지음, 율리아 프리제 그림
지영은 옮김, 하늘파란상상
64쪽, 1만2000원
이 책의 주인공인 여우 콘라트는 평생 굶으며 살았다. ‘그 놈의 정(情)’ 때문이었다. 애당초 오리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으면 배부른 여우로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인생은 우연히 그렇게 틀어졌다.
이 책은 오리 아빠로 살다 간 여우 이야기다. 시작은 이랬다. 숲 속 호숫가의 엄마 오리를 잡아먹어야 할 상황에서도 콘라트는 엉뚱하게도 엄마오리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엄마오리는 콘라트가 다가오자 호숫가에 알을 남겨 둔 채 도망갔다. 문제는 집으로 가져온 알에서 아기 오리가 깨어난 것. 잡아먹기엔 너무 작은 오리를 바라보는데 아기 오리는 콘라트를 보고 “엄마” 라 불렀다. 그런 아기 오리에게 “너를 잡아먹겠다”고 말하는 대신에 숫컷인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아니야! 아빠야”라고 말해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여우 아빠와 아기 오리의 기막힌 동거 이야기다. 콘라트는 아기 오리가 자기의 발등을 베고 잠이들어 버리자 옴짝달싹하지 못해 발에 쥐가 나기도 하고, 아기 오리를 공중에 던졌다가 잡아주는 놀이도 함께 한다. 아기에게 로렌츠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콘라트는 오리를 잡아먹고 싶은 욕심을 잊고 로렌츠를 늠름한 숫컷 오리로 키웠다. 하지만 그는 항상 배가 고팠다. 로렌츠가 여자친구 엠마를 데려왔을 때도 속으론 잡아먹을 궁리를 했지만 어느새 엠마와도 친해졌다. 로렌츠와 함께 사는 엠마가 새끼 오리를 낳았을 때도 콘라트는 머릿 속에 오리알 볶음을 떠올렸지만, 어느새 아기 오리들과 잘 놀아주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기 오리들은 또 다른 오리들을 낳고, 결국 콘라트는 수많은 오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다가 삶을 마감한다. 끝내 오리를 한 마리도 잡아먹지 못한 채….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며 아기오리를 보듬어 진정한 아빠가 된 여우 콘라트. 책장이 뒤로 넘어갈수록 순해지는 콘라트의 표정을 엿볼 수 있다. [하늘파란상상 제공]
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