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준태 '금남로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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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남로는 사랑이었다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에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 언덕이었다

달맞이꽃을 흔들며 날으는 물새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입술이 젖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발바닥에 흙이 묻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 김준태(52) '금남로 사랑' 중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 미움도 슬픔도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이 시다. 김준태는 고향 '금남로' 를 사랑으로 노래한다. 스무해 전 오늘 금남로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그날 군화 발자국 소리, 운동화 발자국 소리…, 최루탄 연기와 총소리…. 그리고 그리고 눈동자에 새겨진 일들을 시인은 모른 체한다. 모른 체하면서 그 이야기들을 꽃잎으로 피워낸다. 보리피리 소리로 상처난 가슴들을 달래준다. 이것이 시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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