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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낙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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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이 남미나 태국과 같은 통화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꼭 7년 전 오늘이었다. 많은 일간지들이 알퐁스 베르플라츠 국제결제은행(BIS)총재의 말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당시 한국은행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한국의 경제여건은 건실하며 원화와 태국의 바트화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이보다 이틀 앞선 1997년 9월 18일엔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의 비슷한 발언이 보도됐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위기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또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조정 과정'이라고 표현하면서 연간 6~7%의 성장이 무난하다고 봤다. 캉드쉬 총재와의 인터뷰 기사는 워싱턴발 본지 1면 톱을 장식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모두 헛짚은 낙관론들이었다. 불과 3개월 후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IMF의 지원을 받기로 했으니 말이다.

97년 가을은 위기감이 점점 높아지던 때였다. 대기업의 부도가 이어지고 환율은 처음으로 달러당 900원을 넘어 1000원대로 향하고 있었다. 시장은 불안해 했지만 정부는 건실한 경제여건을 강조했다. 캉드쉬나 베르플라츠와 같은 국제금융계의 거물들이 가끔 쏘아주는 지원사격도 정부의 낙관론을 뒷받침해줬다. 침몰해가는 선상에서도 낙관론과 위기론이 교차했던 것이다.

경제여건은 크게 달라졌지만 지금도 그런 엇갈림은 되풀이되는 모습이다. 지난주 한국금융연구원의 세미나에선 참여정부의 경제실정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최근의 경제위기론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이나 남미식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는 대안 없는 비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관변 학자들도 위기론이 과장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위기상황을 전하는 신문기사들은 사실에 기초한 분석이 아니라 감정에 치우친 인상비평에 가깝다고도 한다.

물론 대안 없는 비판은 공연한 불안감을 조성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낙관은 늘 예민해야 할 위기의식을 무디게 만들고 만다. 7년 전의 신문 스크랩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