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너스 잔치에 세금 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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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 임직원이 받는 고액 연봉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영국이 가장 먼저 금융권 고액 연봉에 직접 메스를 들이댔다.

앨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은 내년 4월 시작되는 2010~2011 회계연도를 앞두고 9일(현지시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예산안 초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 내용은 금융회사가 이날부터 내년 4월 5일까지 임직원 1인당 2만5000파운드(약 4750만원) 이상의 보너스를 지급하면 이를 초과하는 금액의 50%를 세금으로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납세 의무는 임직원이 아니라 은행이 진다. 은행 주주 입장에서 고액 보너스를 감시할 유인이 생기는 셈이다. 영국 재무부는 2만 명의 은행 임직원이 과세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통해 5억5000만 파운드의 추가 세수를 기대하고 있다.

◆고액 연봉 과세 왜 나왔나=영국이 보너스에 일회성 과세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1년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에도 당시 고금리 덕분에 엄청난 수익을 내던 은행 임직원의 보너스에 한 차례 과세를 한 적이 있다. 그 후 28년 뒤에 노동당 정부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과세 방침에 대해 “노동당 정부임에도 기업 친화적 정책을 펼치던 고든 브라운 정부가 다시 계급을 중시하는 과거 정책으로 회귀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이번 조치는 정치적·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이다. 금융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1조 파운드의 국민 세금을 은행에 집어넣었다. 그 후 은행은 정부의 자본 투입과 저금리 덕분에 잇따라 흑자로 돌아섰는데, 정부 지원으로 살아난 은행들이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이자 여론의 비판이 거셌다. 이번 기회에 은행의 군기를 잡아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정치적 계산도 한몫했다. 경제적으로는 세수를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들끓는 금융가=영국 금융회사들은 이번 임시 과세를 ‘로빈후드세(稅)’로 부르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을 떠나겠다”는 으름장도 나온다. 이번 과세로 금융중심지로서 런던의 이점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 월가 은행가는 “많은 금융회사가 본사를 영국에서 옮기려 문의해 오고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누가 영국에서 금융사업을 하기 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고액 연봉을 규제하면 경쟁력 있는 인재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반발도 있다. 따라서 전 세계가 동시에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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