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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기한 최고 영웅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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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할리우드에서 백인의 전유물이던 지적이고 영웅적인 캐릭터를 흑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연기파 배우 덴절 워싱턴(50.사진). 11일 폐막한 베니스 영화제 기간 중 워싱턴과 만나 올 가을 국내에서 개봉하는 두편의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맨 온 파이어'(24일 개봉)에서는 어린 소녀 피타(다코타 패닝)의 보디가드를 맡게 된 전직 CIA요원 크리시, 그리고 '맨추리언 켄디데이트'(11월 개봉)에서는 전쟁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는 마르코 소령으로 나온다.

무조건적인 희생 잘 보여줘

'맨 온 파이어'는 삶의 희망을 되찾아준 소녀가 유괴 살해되자 그의 보디가드가 범죄에 관련한 사람들을 응징한다는 복수극이다. 범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매번 범죄자를 고문.살해하는 장면의 폭력수위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워싱턴은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무고한 희생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나이트클럽을 불태울 때도 춤추는 사람들을 미리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는가. 폭력이 특별히 문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한다는 점에서 크리시는 지금까지 내가 맡아온 그 어떤 역할보다 영웅적인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A J 퀴넬의 원작소설은 마피아가 활개치던 이탈리아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멕시코시티에서 촬영했다. 영화가 묘사하는 멕시코시티는 90분마다 유괴사건이 발생하는 위험한 도시다. 당연히 멕시코에서는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에 대해 "멕시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불쾌하게 여긴다는 걸 알고 있다. 화내는 심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냥 영화로 봐줬으면 좋겠다. 멕시코시티에서 유괴 납치가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건 사실이고, 이 영화는 그 어두운 일면을 다뤘을 뿐이다. '맨추리언 켄디데이트'에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세뇌하는 얘기가 나온다고 미국이 세뇌 천국은 아니듯이 말이다"고 이해를 구했다.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테이블에 놓인 크리스털 컵을 가리키며 "누군가 이 컵을 만든 사람이 있다. 여기 둘러앉은 아홉 사람 가운데 둘은 이 컵을 마음에 들어하고 나머지 일곱은 싫어한다고한들 이 컵을 만든 사람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예를 들며 "사람들의 평가를 굳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멕시코 무대, 폭력장면 많이 나와

전공(저널리즘)과 무관한 길을 들어선 그는 "배우는 매우 축복받은 직업이다. '맨 온 파이어' 촬영 중 다코타 패닝이 '이 직업을 갖게 돼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의 위치에 정말 감사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주연이 아니라 조연을 하게 되더라도 괜찮은 작품이라면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베네치아=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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