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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장관은 지금 과외 교습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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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 전 문용린(文龍鱗)교육부장관을 만났다. 자연히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과외가 화제가 됐다. 대책과 고액과외의 기준 등 이런저런 의견을 나눴다. 이야기 끝에 그는 "취임한 지 1백여일이 지났다. 아직 교습 중이다.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 달라" 고 말했다.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말대로라면 교육부장관이 교육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 장관이 과외문제의 파장을 완전히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때까지 초.중.고생 8백30만여명과 학부모들은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입시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하고 능력위주의 사회를 만들겠으며, 청소년들은 과외로부터 해방되고 학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로부터 벗어나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상은 어떤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교육상황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의 사교육은 너무나 뿌리깊기 때문에 공교육과 분리할 수 없다. 대신 학교의 방과후 교육을 강화하고 정부가 빈민층을 지원해 빈부격차 심리를 줄여야 한다" 고 권고했다.

교육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대책마련을 소홀히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과외가 전면 허용되자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돈도 없이 공교육을 살리겠다고 35조원이 필요한 각종 대책을 연일 내놓고 있다.

저소득층에 과외비를 지원하느니 마느니 등 마치 호떡집에 불난듯 요란을 떨고 있다.

교육환경은 점차 열악해지고 있다. 교육재정을 OECD 국가 수준인 국민총생산(GNP) 대비 6%로 확충해 낙후한 교육여건을 개선하겠다는 대선공약은 어디로 간 데 없다.

金대통령이 취임하던 98년 4.5%에서 지난해와 올해는 4.3%로, 늘어나기는커녕 되레 줄어들었다.

교실이 부족해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학급당 학생수가 증가하고,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수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 혈세로 설치한 교육용 컴퓨터 가운데 상당수는 소프트웨어와 통신비 부족으로 놀리고 있다. 대입제도 개선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현재 고교 2학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2학년도 수능시험의 성적은 등급제로 평가된다.

교육부는 수능을 대학생이 되는 자격기준으로만 활용하고 1~2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학들은 난이도가 쉬워지면서 변별력을 상실하고 등급제로 수험생의 우열을 판정하기 어려운 수능 대신 학생부 성적에 비중을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교의 실력차를 인정해 절대평가를 하는 학생부를 등급화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자 고등학교들은 중간.기말고사를 쉽게 출제하고 과외도 점차 내신성적 올리기에 집중되고 있다. 여전히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예산위원회가 구조조정 차원에서 시작한 교원정년 단축은 교직사회에 혼란과 갈등을 유발하고 교사부족 현상을 심화시켰다.

대학교육을 대학원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두뇌한국(BK21)사업은 잦은 선정기준 변경으로 대학끼리 '눈먼 돈' 나눠먹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교육은 총체적 부실의 늪에 빠져 있다.

金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자. 그는 교육개혁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과제이므로 만난(萬難)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성취하겠다고 약속했다.

2년2개월여 전의 다짐이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경실련은 지난 3월 교육분야 공약 이행률을 21.9%로 평가했으며, 공약 미착수율은 43.8%로 공약 17개 분야에서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 개선도, 경제활성화도, 정치개혁도 중요하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한국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교육열과 그 과정을 통해 양성된 인재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장관 수업을 받고 있는 교육부 장관에게 교육개혁을 맡겨둘 만큼 한국교육의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

그가 한시 빨리 '과외' 를 마치고 황폐해진 교육을 살리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도성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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