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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으로 끝난 '양강도 버섯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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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영국.독일 등 평양 주재 서방 7개국 외교관들이 방문한 북한 양강도 삼수군의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 17일 공개됐다. [삼수군(북한) AP=연합]

실체가 무엇인지를 놓고 논란을 빚은 양강도 '폭발 징후'는 북한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의 발파작업을 우리 정부가 오인한 탓인 것으로 17일 결론이 났다. 지난 9일 첫 징후가 포착됐을 때 핵폭발 가능성까지 점치던 정부 판단이 8일 만에 북측 주장대로 발전소 공사 쪽으로 매듭지어진 것이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가 의심한 지역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을 뒷받침할 추가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런 일로 국민 불안을 조성하거나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 평양 외교단이 본 발파현장=16일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을 90분간 돌아본 평양 주재 7개국 외교관의 증언은 17일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북한 관리는 이들에게 "지난 몇 주간 정밀 발파작업을 했고 8일과 9일 두 차례 대발파를 했다"고 설명했다.

도리스 허트람프 주 북한 독일대사는 교도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거대한 현장에서 어마어마한 흙을 옮기고 있었다"고 밝혔다. "북측은 두 차례 발파로 15만㎥의 흙과 바위를 제거했고, ㎥당 100g의 폭약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는 말도 했다. 파울 베이예르 스웨덴 대사는 "300t의 폭약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허트람프 대사는 "북한이 막 기초공사를 시작했고 앞으로 산 두 개를 더 허무는 발파를 할 것이라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 빗나간 초동 대응=정부가 12일 "징후를 포착해 파악 중"이라며 언론에 밝힌 정보는 대부분 빗나갔다.

9일 오전 미 상업위성 옵뷰(Orbview) 3호에서 받은 문제의 구름사진은 '진짜구름'으로 판명됐다. 이 사진을 근거로 "김형직군 월탄리가 폭발지점"이라고 한 판단도 틀렸다.

결국 실제 폭발은 김형직군에서 90km 떨어진 삼수군에서 벌어졌는데 엉뚱한 곳을 뒤진 모양새가 됐다. 여기에다 열차나 탄약.유류창고의 폭발이라는 그럴 듯한 인적정보(humint)가 혼선을 부채질했다. '왜 한밤에 폭파를 강행했을까'라는 의문에 정부는 뚜렷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 뜬구름 잡은 정부 판단=정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한.미 정보공조엔 균열이 엿보인다. 17일 리언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까지 나서 "한.미 공조 이상무"를 강조했으나 워싱턴과 서울은 온도차가 나타난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4일 "우리가 본 것과 일치한다"며 북측의 '발파공사'설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부 고위 당국자는 17일에도 "파월이 뭘 보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책임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일각에서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접근에 불만을 가진 강경 성향의 정보라인에서 언론에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흘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분란보다 부실한 대북정보 수집.분석체계를 정비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구름사진이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재발돼선 안 된다는 것. 오판으로 한국의 대북정보 수준을 노출시키고 북한의 목소리만 키워준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영종 기자

*** 삼수발전소는

해발 1000~1500m 고원 지난 5월 110m 댐 착공

삼수발전소는 양강(兩江.압록강과 두만강)도 삼수군과 혜산시의 경계에 짓고 있는 수력발전소다. 북한은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허천강과 운총강의 합류 지점에 5만㎾급 발전용량의 댐(110m 높이)을 만들어 양강도 지역의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5월 7일 박봉주 내각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을 했으며 관영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노동신문은 이튿날 보도에서 "착공식이 끝난 다음 발파에 이어 건설작업이 시작됐다"고 전해 발파 공법을 사용했음을 뒷받침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기 문제를 풀자면 대규모 발전소와 중소규모 발전소 건설 두 가지를 틀어쥐고 나가야 한다. 착상이 기발하다"며 이곳에 발전소를 짓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 차원의 대규모 공사를 담당하는 청년건설돌격대지도국 강원도 여단 등 5만명의 군인.노동자가 동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매우 험난한 곳에 가는 것'을 삼수갑산(三水甲山.갑산군은 삼수군과 인접)이라고 일컫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지역은 교통이 불편해 과거에 유배지로 유명했다. 삼수군은 전체면적(886.98㎢)의 57%가 해발 고도 1000~1500m에 달하는 고원지대로 개마고원의 중심지역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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