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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미케닉씨 '미국판 장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대학시절 화염병 시위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고 달아나 28년간 선량한 시민으로 살았고 주변의 권유로 시의회에 출마하려다 신분이 드러나 재수감된 한 사내의 인생역정이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최근 하워드 미케닉(52)의 '장발장' 같은 삶을 자세히 보도했다.

월남전 반전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1970년 5월 4일. 워싱턴대 4학년이던 미케닉은 3천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학군단 건물이 불탔고 학생들은 소방대에게도 화염병을 던졌다.

미케닉은 며칠 후 체포됐다. 화염병 투척혐의를 부인했지만 그는 1심에서 5년형을 받았다.

2년 뒤 대법원의 항소가 기각되자 보석 중이던 그는 달아났다.

집을 저당잡혀 보석금 1만달러를 내준 카터 리비드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그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곧이어 미국 전역에 '무기소지, 흉포함' 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의 얼굴 수배전단이 뿌려졌다.

28년이 흐른 올 2월.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한 지방신문 여기자는 지방의원에 출마한 게리 트레드웨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20여년 동안 성실한 삶으로 주변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온 사람이었다.

여기자는 건강식품점과 여관을 운영하는 트레드웨이가 지방신문에 글을 쓰고 방송출연도 하면서 지역사회 시민운동에 참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수입의 4분의 1을 자선단체에 꼬박꼬박 기부해 온 보기드문 사람이기도 했다.

지방의회 의원출마도 주변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여기자는 "당신이 누군지 밝혀달라" 고 요구했다. 갑자기 트레드웨이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는 하워드 미케닉이라는 도망자" 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 고 부탁했다.

트레드웨이가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은 이유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전 부인을 포함해 적어도 12명이 그의 과거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명 한명에게 알려질 때마다 감옥에 갈 위험이 따르는 것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얻으려는 본능은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자도 처음에는 입을 다문 사람의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트레드웨이가 지방의원 후보를 사퇴하면서 "백혈병에 걸렸다" 고 거짓말을 하자 진실을 공개했다.

이로써 그의 도주행각은 끝이 났다. 그는 경찰 체포장에 서명을 하며 자신의 본래 이름의 철자까지 혼동할 정도였다.

도주.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가 추가돼 애리조나주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그는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고 말한다.

미케닉의 보석금을 내줬던 리비드 교수는 "정부의 무리한 진압이 문제였다.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당시의 벌은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벌을 받았더라면 지난 28년과 같은 만족스런 삶을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판 장발장 미케닉의 말이다.

김기협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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